심야의 방문자

by 랜덤초이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아마도 REM 수면에 빠져있을 듯한 숙면 중이었다.


잠결에 아파트 공동 현관문에서 우리집을 호출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모두 깊게 잠들어 있던 터라 아무도 일어나지 못했고, 평소 잠귀가 밝은 나조차도 그저 다른 집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거겠지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 애썼다.


그때 다시 공동 현관문에서 우리 집을 호출하는 초인종 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

놀라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고, 창밖엔 거센 비가 내리고 있던 터라 창문으로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졸린 눈으로 거실로 나가 인터폰에 비친 CCTV 화면을 보니 검은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머리에도 검은 헬멧을 쓴 사람이 카메라 앞에 바짝 서있는게 보였다.

마치 영화 '공공의 적'에서 이성재' 배우가 연기했던 악역의 모습이 떠올라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누구냐고 물었지만 퍼붓는 듯한 빗소리에 서로의 얘기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놀랐지만 그 새벽에 연락도 없이 누가 우리 집을 찾아올 이유는 없었고, 아마도 다른 집을 찾아온 사람이 공동 현관문을 열 수 없어서 부엌 보조등이 켜있던 우리 집 호수를 누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은 마음에 얼른 공동 현관문을 열어줬고 이제는 자기 집을 찾아가겠지 하고 생각한 체 다시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몇십 초의 시간이 흐른 뒤 ...


이번에는 우리 집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그제야 나는 잠에서 확실히 깨었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누굴까 새벽 두 시 반에 누가 우리 집에 찾아온 거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야구 방망이가 어디 있더라?

'애들은 잘 자고 있나?'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릿 속이 복잡했다.


현관벨을 눌렀는데 우리 집 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인지 정체모를 방문자는 문을 노크했다.

"콩 콩"


그제서야 잠에서 깬 아내가 '누구야' 하고 나에게 물었지만, 나 역시 방문자의 정체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고 대답할 만큼 정신이 있지도 않았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나는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무서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 손에 무기로 쓸만한 긴 우산을 찾아 들고 조심스레 현관문을 조금 연 상태로 물아봤다.


"누구세요?"


나의 질문에 흠뻑 젖은 검은 옷의 방문자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배달시키셨잖아요? 왜 문을 안 여세요?"


어이없는 그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순간 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 배달 안 시켰는데요!"


"여기 101동 1203호 아니에요?"


"여긴 102 동인 데요"


"에이씨~~"


내 대답을 듣곤 방문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가버렸다.


아마도 너무나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 아파트 동을 확인하지 않은 체 지레짐작으로 가장 끝에 있는 102동을 101동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처음 공동 현관문의 초인종이 울리고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집 현관의 벨이 울릴 때까지의 시간은 10분도 안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내 머릿속에는 여러 영화와 TV드라마에서 봤던 오만가지 무서운 시나리오가 스쳐갔고 상상만으로도 몸이 경직되는 무서운 공포가 느껴졌었다.


심하게 잡쳐버린 수면 시간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다음 날이 되었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지만 그후로 며칠 간은 그날 밤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었다.


물론 역지사지로 생각하자면 그 방문자(배달원)의 경우,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에 배달 주문을 받고 힘들게 찾아갔더니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늦고 문을 늦게 열어준 것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착오의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아무런 사과도 없이 가버린 건 생각할 수록 괘씸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지 찾아내어 강하게 항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비오는 날 심야의 그 무서운 경험이 아무 일 아닌 해프닝으로 지나간 것이 다행이다 싶다.


단 10분 동안 있었던 일이 며칠의 기분을 좌우하고 몇년의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지나친 상상력은 건강에 해가 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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