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게시하지 않고 있었다.
글을 게시하지 않은 동안에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게시가 줄어든 이유는 글을 공유하는 것에 좀 더 신중해진 때문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뭐든 글로 써서 마음속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었다.
내가 겪었던 답답했던 경험들과 부당한 현실을 절감한 기억들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만 경험했고 그래서 오롯이 나만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아주 불편한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이유가 컸다.
내가 겪은 일들은 지난 당시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지금도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고 있다.
마치 위험하고 지저분한 장소를 피하듯 모두 입과 귀를 다물지만 여전히 당시에 벌어진 일은 다른 일들에 영향을 끼쳐서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에도 또다시 영향을 주고 있다.
현실 속 권력관계가 투영된 일들의 경우, 사람들은 혹시 불의한 일들을 경험해도 거대한 조직이나 권력자에 맞서느니 조용히 침묵하기를 택하게 된다. 그래야 편하다고들 얘기하지만 정작 그런 얘길 하는 사람들이 그 같은 경험을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해봤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를 위한 다른 사람들의 충고와 조언이 설혹 100% 옳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는 용납할 수 없는 경우라는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 대한 기억이 생각을 지배하고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으면 결코 지난 일에 대한 생각을 깨끗이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기억은 모조리 글로 남겨놓고, 그렇게 토해내거나 뱉어내듯 정리하고 나면 내 머릿속에서는 당시의 기억을 지워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잘 기록해 두었으니 굳이 내 머릿속에 그런 역할을 맡길 필요가 없다고 타이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응어리진 기억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형태의 글로 정리해본 적이 있었다.
때로는 편지를 쓰고 때로는 시를 써보고 또 언젠가는 보고서를 쓰듯 정리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글로 써봐도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아무리 자세히 정리하려 해도 당시의 사실과 내 감정이 충분히 기록되어 전달되는 것 같지 않았고, 또 아무리 간략하게 정리하려 해도 아쉬움에 다시 글이 길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피드백해주지 않는 고민을 그저 글로 남기기만 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글을 써가면서 나를 괴롭힌 특정한 사안에 대해 내 기억을 그대로 정리한 글이 A4 분량으로 100page를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친한 후배에게 글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내 글을 읽고는 기왕 이 정도 분량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실화를 허구적으로 각색해서 소설을 써보는 게 차라리 어떤가라고 추천해줬다.
내가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한편으로는 내가 겪은 사실이 진짜 소설의 소재가 될 만한 극적인 요소가 있을까 하는 것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일단 어떤 글이든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먼저 경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글을 쓰는 기술이 생기고 생각이 정리되다 보면 내가 경험한 사실을 좀 더 실감 나게 묘사하고 극적으로 기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어느새 브런치에 게시한 글이 60개에 이르게 되었고 목표했던 100개의 습작까지는 40편이 남았다. 신기한 건 이렇게 글을 써갈수록 글쓰기가 더욱 쉬워질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오히려 글 쓰는 행위에서 부담과 책임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혹시 부정확한 논리로 사실을 비약하는 건 아닐까? 내 기억의 한계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적게 되는 것은 아닌가? 짧은 지식이 오류로 내비치는 건 아닐까? 등의 걱정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경우도 생기면서 과연 내가 글에 쓰고 주장하는 것 같은 바람직한 모습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게 되었다.
말이든 글이든 일단 바깥으로 전달되고 나면 그때는 내 생각과 내 통제 안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보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엔 머리가 복잡할 때 무작정 나가서 걷다 보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처럼, 아무 소재나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뭔가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아직까진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경지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지고한 삶을 살아간 성인들의 글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 상의 논쟁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든 생각이다.
고민도 의심도 처음의 생각대로 100개의 글을 쓸 때까진 미뤄둬 보자.
그리고 100개의 글을 마무리했을 때 지금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진짜 원하던 글을 쓸만한 편안함에 이르렀는지를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