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선 장난으로 머리를 때리는 게 흔한 일이었다.
뒤에서 쫓아가며 "형석아~!!" 부르면서 뒤통수를 치고, 뒤돌아 본 친구에게는 "어 형석이가 아니네?"라고 알면서도 장난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질 나쁜 친구들의 가학적(加虐的) 장난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한 친구 사이에서 이런 식의 장난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교내 체벌(體罰)이 금지되기 이전에는 학교 선생님들 역시 학생의 머리를 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출석부 같은 걸로 머리를 치거나 졸고 있는 학생의 목덜미나 뒤통수를 툭 치는 정도의 행위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군대에 가니 간부나 선임병이 사병의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부대 안에서 구타가 금지되어 얼차려로 기합만 준다던데, 라떼(?)는 뒤통수를 치는 정도의 구타는 군대 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겪었던 당시에는 누군가 다른 이의 뒤통수를 때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기저기서 드물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머리를 때리는 건 상당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일임에 분명한데 왜 하필이면 뒤통수를 때릴까?
아무래도 정면에서 손이 들어가면 맞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때리는 건 부담스러워서 뒤통수를 때리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위와 같이 뒤통수 맞을 일을 간혹 보고 겪어왔지만 사실 후두부를 가격하는 것은 모든 격투 스포츠에서 반칙으로 규정하고 룰에 의해 강력히 금지되는 위험한 행동이다.
권투에서 상대 선수의 후두부를 가격하는 반칙을 일컫는 'Rabbit punch'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 뜻을 모르고 접했을 때는 '토끼 주먹? 이게 뭐지 토끼도 주먹질을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냥꾼들이 토끼를 잡은 후에 토끼의 머리 뒷부분을 쳐서 죽이던 일에서 유래된 단어라는 걸 알고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뒤통수는 두개골로 보호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어 있어 이곳을 강하게 맞게 되는 경우 경골과 척추에 심각한 대미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격투 스포츠에서 후두부 공격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뒤통수치다'라는 표현은 이처럼 물리적 타격뿐 아니라 다른 의미로도 관용적으로 쓰이곤 한다.
'누군가의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고 돌아서다.'라는 뜻으로 말이다.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고 돌아서는 경우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정말 이런 경우는 뒤통수에 'Rabbit punch'를 맞은 것처럼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원래 기대가 없는 상대에게는 실망할 일도 크지 않지만 뭔가 기대하고 신뢰하는 상대에게서 배신을 당한다면 훨씬 치명적으로 가슴이 아프니 말이다.
그 상대가 영원을 약속한 연인이거나 의리를 맹세한 친구일 때도 그렇겠지만 자신이 속한 소속집단이나 직장 안에서 맺어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뒤통수 맞는 일은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
사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질 법도 하다.
그런데 나의 경우 회사생활의 경험 속에서 숱한 사람들에 실망하여 기대라는 것을 갖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특정 경영진을 크게 신뢰하고 그가 회사를 위해 사심 없이 훌륭한 의사결정을 해줄 것이란 기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경험했던 어는 경영진보다도 그분은 성실하게 회사의 일을 고민하고, 다른 직원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사실을 직시하면서 정직한 보고를 요구하는 그런 리더였다.
부정확하거나 사실을 속이는 보고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분이라면 지금보다 조직을 한 단계 성장시킬 사람이라 믿고 그분의 지향점에 맞춰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분이 보여준 그동안의 모습들이 일관된 행동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있어서는 사실에 눈감고 필요한 의사결정과 결과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차라리 다른 이들처럼 특별히 기대할 게 없는 평범한 임원이었다면 모르겠으나 내 나름의 판단 기준에서는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다른 행동을 보고 나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도를 숨긴 채 사람들을 이용하고 필요가 다하면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결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경추가 손상될 정도의 'Rabbit punch'를 맞은 상태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는 한다.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앞에서 주먹을 휘두른다면 무방비로 뒤통수를 맞는 법은 없을 텐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권투시합을 하는 사각의 링처럼 Rabbit punch 같은 반칙에는 경고를 줄 수 있는 심판이 있는 곳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심판도 응급요원도 없는 정글 같은 사회는 너무 잔인하기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