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없다', '잘 모르겠는데요'와 같은 유행어로 잘 알려진 코미디언 심형래 씨는 과거 바보를 연기하여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인기스타이다.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 시리즈 등 어린이 대상의 영화를 꾸준히 발표하던 그는 국내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았던 SF 영화 제작에 도전했고, 1999년 일본의 고질라와 비교되는 괴수 영화 '용가리'를 제작했다.
이런 도전의 결과로 1999년 심형래 씨는 정부의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었고, 당시 ''국민의 정부' 공보실'에서는 그의 도전 스토리를 활용해 TV CF까지 찍었었다. 이때 그의 광고 멘트가 바로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겁니다."라는 유명한 대사였다.
직장 생활의 초반에 위치했던 나는, 광고에 나온 그의 멘트를 듣고 '도전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크게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래 못할 일이 어딨냐?'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후 여러 가지 논란이 이어지면서 신지식인 1호의 성취에 대한 평가에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난 요즘에 나는 그 당시 마음을 울렸던 공익광고 속의 말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건 뭔가를 '안 하는 것'도 판단과 선택의 문제인데 '안 하는 것은 못하는 것'으로 등치(等値)시켜서 이해되게 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수많은 도전을 해왔고, 많은 영역에서 그 노력의 결과로 성공의 역사를 써왔다. 하지만 생각해보자면 어떤 경우에는 뭔가를 하는 것이 전혀 도움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No deal 이 Bad deal 보다 낫다."는 얘기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그동안의 직장생활 경험 속에서 누군가 뭔가를 해냈다는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 결과의 유용함과 효과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 없이 그냥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 결과로 조직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기 어렵고, 오히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의 기록조차 남지 않는 경우도 수없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시도했다는 성과만을 발판으로 성장하고, 누군가는 그 무식한 시도의 실체를 잘 감춘 포장지가 용도를 다한 후 버려지는 것처럼, 일을 하고 그 결과의 폐해에 책임져야 하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물론 결과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 그 시도 과정에서 성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고 훌륭한 일로 평가받을만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도를 내세우는 사람들 중에서 뒤에서는 스스로 '이건 안 되는 일이야.'라고 판단하면서도, 앞에서는 '이건 반드시 돼야 하는 일'이라고 강변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챌린지를 모면하려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
하긴 꼼꼼하게 수년 이상 걸려서 해야 할 일을 한해 만에 평가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비판적으로 이해해주자니 그 뻔한 연극에 들러리 서다가 실패의 낙인이 찍히는 직원들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안 하면 비난받고 책임지게 되니까 잘못된 일인지 알면서도 해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Good deal을 하랬더니 No deal 이 될까 무섭다고 Bad deal을 해버리는 그런 무책임함은 대체 누굴 위해서 필요했던 걸까?
그래서인지 나는 공익 광고에 나왔던 그 멋진 대사도 이제는 약간 바뀌어야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의미가 없으면 안 하는 겁니다."
그래야 적어도 무의미한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경우를 조심할 수 있는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