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by 랜덤초이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무서워서 보지 못한다.

몇몇 공포영화에 도전해보기도 했었지만, 슬래셔 무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잔인한 화면이 없어도 공포영화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기괴한 음향 때문에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잘 만든 공포영화로 흥행에 성공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역시 나는 보지 못했다.

다만, 주말에 방영되는 '영화가 좋다',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서 결론이 생략된 대강의 줄거리만 봤을 뿐이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극 중 김환희 배우의 대사인 "뭣이 중헌디" 라는 부분은 여기저기에서 지겨울 정도로 듣게 되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 대사를 누구에게 한 것인지도 모르고, 앞뒤의 맥락을 모르니 왜 그렇게 소리쳤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사는 너무나 유명했기에 정말 여러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흉내 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특히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마마무라는 걸그룹이 그들의 히트곡 '데칼코마니' 가사를 개사하여 중간중간에 영화의 명대사 애드리브를 날릴 때도 솔라가 소리치는 그 대사를 들을 수 있었다.


"뭣이 중헌디"


그런데 이 대사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다.

만약에 회사에서 업무의 의도와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작업과 재작업을 지시하는 리더를 만나면 마음속으로 항상 소리치던 대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자', '저렇게 정리하자'라는 가이드도 없이 달랑 보고 날짜만 지정하여 뭐든 들고 오게 만들고, 그런 상태에서 보고서를 보고 '이게 부족하다', '저게 모자라다' 하는 수정 지시만 남발하고는 다시 원위치를 반복시키는 그런 리더에게 말이다.


물론 나 역시 어느 조직 단위에서는 리더이기 때문에 리더들이 업무 지시를 할 때에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온전한 이미지가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리더가 업무지시를 할 때에는 '어떤 배경에서 하는 지시인지', '자신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지시하는 것인지', '어떤 가설을 배경으로 지시하는 것인지', '어떤 목적에 활용될 지시인지' 정도라도 당연히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와 달리 정리된 결과를 만들어서 가져가야 하는 개인도 스스로 생각하며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 작성 방향에 대한 대강의 컨센서스도 없는 상태에서 빠른 작성을 지시하는 것은 서로를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다.


어느 위인의 말씀 중에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의미 없다"라는 말이 있다.

대전에서 서울을 가야 하는데 남쪽으로 가기로 방향을 잡으면 빠르게 달릴수록 목적지와는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 리더가 잘 모르면 그냥 우린 서울에 가야 한다 얘기하면 될 일이고 그러면 혹시 서울 가는 길을 아는 직원이 그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방향도 모른 체 무조건 빨리빨리 독촉하는 사람들에겐 특징이 있다.

요란하게 남이 볼 수 있도록 바쁘게 움직이는 게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점이다.

일(Work)과 활동(Activity)을 구분하지 못하니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 관심이 있지 그게 진짜 성과와 결과로 이어지는 일인지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작업의 어려움은 부하 직원이 감당하니까 자신은 부하 직원이 바삐 움직이게 해서 관리자로서 유능해 보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멍청하다 vs 똑똑하다', '부지런하다 vs 게으르다' 를 기준으로 유형화된 네개의 리더 유형 중, 최악의 리더유형이 "멍청하고부지런한 리더"인 것은 중요한 일이 뭔지 모른 체 부하를 닦달하는 리더가 조직에 얼마나 해악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잘 되는 경우를 보면 그건 그 사람 위의 리더가 좋은 리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어떤 일을 강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스스로에게도 '뭣이 중헌디' 하고 질문해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답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만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4화멀티플레이어에 대한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