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를 위한 변명

by 랜덤초이

"아이들은 참 겁이 없다."


이제 막 걸음을 배운 듯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걷다가도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찻길 쪽으로 향하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나 회전문 등 위험한 환경으로 돌진하기도 한다.

끓고 있는 냄비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고, 포장재로 딸려 온 드라이아이스를 집으려 손을 뻗기도 한다.


하나같이 위험하고 조심해야 할 일들이지만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해서 보호자의 심장을 철렁거리게 만든다.


뱀이나 거미 같은 특정한 위험에 대한 공포는 DNA에 각인되어 유전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진화하면서 발생되는 다양한 위험요소를 모두 미리 알아서 유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고, 겁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건 결국 어른들의 당연한 책무일 수밖에 없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젊은 날을 회상하며 상투적으로 하시는 얘기가 있다.


“그땐 참 겁도 없었지."


군사독재 시절 젊은이들은 서슬 퍼런 공권력의 탄압을 보면서도 겁 없이 저항했다.

불합리한 제도와 거대한 기득권의 부패에 저항하는 건, 겁 없이 앞장설 수 있는 젊은 세대의 몫이었다.


90년대의 락스타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명언으로 남긴 커트 코베인 역시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 (The duty of youth is to challenge corruption.)"

이라고 한 바 있으니

아무래도 겁 없이 무언가에 나서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시절이 적당한 때인 듯하다.

아마도 "겁이 없다."는 상태는 결과의 위험과 고통, 그리고 좌절 같은 경우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무지 같은 상태라고 볼 수도 있는가 보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무엇을 피해야 하고 무엇이 위험한 지를 더 많이 알게 되어서 "겁"이라는 감정의 대상을 점점 더 많이 갖게 되니 말이다.




"겁쟁이"란 표현은 흔히 용기 없는 사람에 대해 비하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에 겁을 느끼는 사람은 그가 살아오며 보고 겪었던 축적된 경험의 결과로 그런 상태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면, 겁을 갖는 것은 당연한 보호기제(保護機制)이고 사람마다 겪어온 인생이 녹아있는 기록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겁쟁이라 놀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는 어떤 경험이 있었던 것일까 연민을 가져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도 된다.


겁쟁이보다 오히려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공포를 안겨 겁을 갖도록 만드는 사람 말이다.

법률에 저촉되는 협박의 죄를 짓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합법의 범주 안에서도 교묘하게 상대에게 겁을 주어 본인의 이득을 취하는 사람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상대에게 알아서 처신하라며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 속에도 속내를 돌아보면 상대를 겁주기 위한 목적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렇게 보고하면 CEO가 좋아하실 것 같아?"


이런 식의 말로 권력자의 심기를 빌려 누군가의 판단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결국 양심과 사실보다 눈치를 살펴서 일해야 한다고 겁을 주는 것이다.

팩트와 로직으로 스스로의 주장을 백업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어 스스로가 해야 할 판단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기도 하다.


겁쟁이를 비하(卑下)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겁주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사회보다는

겁 많은 사람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자신을 위해 남을 겁주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가

훨씬 더 함께 살 만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나이 들어서 알꺼 모를꺼 다 알아버린 다음에도 용기가 필요할 때는 겁 없이 행동할 수 있고, 그래도 최소한 안전할 수 있는 그런 사회면 훨씬 더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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