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입사원으로 취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회사가 속해있는 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빌려 진행된 행사에는 각 계열사의 직원 한명씩 회사의 깃발인 사기(社旗)를 들고 입장해 행진한 후 회장단이 자리한 단상 앞에 도열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각 회사에 깃발을 들고 입장할 기수 한 명씩을 선정해 파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다른 계열사는 어떤 조건으로 기수를 선정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는 단지 다른 계열사의 기수와 비교해 사이즈(size)에서 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래서 당시 신입사원 중 키가 가장 컸던 189cm의 내가 기수로 지명되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장소에 참석해 통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게 영 귀찮고 긴장될 수밖에 없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신입사원인 나에게 거부권이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회장단을 비롯해서 TV 뉴스 또는 신문에서나 볼 수 있던 저명한 명사들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단 점에서 약간은 기대도 되었던 행사 참석 기회였다.
마침내 행사 당일
각 계열사의 기수단이 차례대로 입장할 때는 마치 올림픽 개막식처럼 사회자가 각 회사를 짧게 소개했고, 객석에 참석한 임직원들이 깃발을 들고 들어오는 기수들을 향해 환호와 응원을 보내줬다.
수천 명의 임직원을 가진 계열사의 깃발이 입장할 때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실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신설회사로 전체 임직원이 250명도 안되던 우리 회사의 경우 내가 회사의 깃발을 들고 입장할 때 수십 명 정도의 응원 함성만이 들려왔다.
물론 다른 계열사 직원분들도 크게 격려의 박수를 쳐줬지만 계열사 간에 사세(社勢)를 은근히 과시해 보여주려는 경쟁도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가진 다른 계열사들과는 함성의 크기가 차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심 우리 회사는 앞으로 훨씬 커나갈 신규 사업을 하는 회사라는 자부심으로, 위축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정해진 위치에 가서 섰다.
각 회사 깃발을 든 수십 명의 기수들이 단상 앞에 도열해 서고 회장단이 모두 일어나 함께 사가(社歌)를 제창(齊唱)하는 순서에 이를 때쯤엔 그 웅장한 스케일에 가슴이 벅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나서 나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단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익숙하게 들어봤던 그룹 사가와 달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편곡된 전주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화려한 전주에 당황해 도대체 언제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지 정확한 포인트를 찾지 못했고 결국 아무도 먼저 입을 떼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까 이제는 누구도 먼저 입을 떼서 노래를 시작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회장단을 비롯해 단상에 위치해 있던 사람들 역시 멋쩍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몇 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 후 사가 제창 순서는 끝나버렸다.
… 그렇게 창립 50주년 행사장에선 그룹 사가가 제창되지 못했다.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라는 큰 행사에서 그것도 피날레를 장식하는 사가 제창(社歌齊唱) 순서가 그렇게 마무리되자 나는 우선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나중에 그날의 일 때문에 무슨 사달이 났단 얘기를 듣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그날의 일은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웃어넘길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부족한 실력 때문에 발생한 진행 사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상황을 복기(復棋)했을때 그런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여러 가정이 생각났다.
"그렇게 어렵게 전주를 편곡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한번이라도 리허설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회자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거나 신호를 뒀으면 어땠을까?"
"단상의 누구라도 먼저 노랠 시작하면 어땠을까?"
"저 많은 관중들 중 누구라도 노래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등등의 가정 말이다.
누가 그런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 보니 사실 그런 일을 모면할 다양한 예방 기회 내지는 상황을 수습할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그날은 중요한 행사에서 마무리가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특정 사기업의 내부 행사였던 만큼 그날의 일은 이후에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고 조용히 잊혀졌다. 어쩌면 그룹의 권위있는 누군가가 불만을 표시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소문을 전해들을 정도로의 문제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의 나에게 두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아서 아직도 가끔 마음 쓰이게 하고 있다.
하나는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지 못했던 조직적 역량에 대한 아쉬움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라고 신경 안쓰면 매사 마무리가 부족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일하는 습관은 행사가 아니라 통상의 업무에서도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룹의 최고위 경영진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에서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는 점은 혹시나 이게 우리의 일반적인 실력인 건가 싶은 진한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만약에 나라도 그때 먼저 노래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물론 기수로 서있었기에 각 잡고 꼿꼿이 서있어야 하는 상황이긴 했고, 원래도 워낙 음악과 노래에 자신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조심스럽게라도 노래 불렀으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군가의 책임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말이다.
살아오면서 뭔가를 했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거듭되어 왔지만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일단 해봐라'라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렇다.
내가 선창을 시작해서 행사에 참석했던 그룹의 수많은 임직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 일생에 추억으로 남을 이벤트가 되지 않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로는 필요해 약간의 똘끼!!!~♫"
뮤지컬 '마틸다'에 나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똘끼'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용기'가 있었더라면 당시의 마무리가 모두에게 더 나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