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데 어려운 질문

by 랜덤초이


쉽고 단순한 질문일수록 대답하기는 정말 어려운 경우가 있다.

친구들처럼 편한 사이라면 쉬운 질문엔 쉽게 답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관계가 직장의 상사와 부하직원 간 대화라면 심지어 CEO와 일반 직원과의 대화라면 쉬운 질문이란 없는 것 같다.


CEO가 질문하는 경우 질문의 의도와 배경 등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직원의 보고를 듣고 그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에도 CEO는 짧고 단순하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복잡한 질문보다도 짧고 단순한 질문이 오히려 상대가 대답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10여 년 전 대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재벌 2세이자 로엘백화점 사장인 김주원(현빈 扮)은 백화점의 임원들에게 자주 물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어떤 내용의 보고에도 카운터 어택처럼 물어볼 수 있는 범용적 효용을 갖는 이런 질문은 정말 쉽고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화자(話者)가 갖는 포지션과 위세가 결합되면 질문받는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부담과 압박감을 안겨주는 질문이 된다.


CEO에게 보고를 한 후 혹시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당당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① 자기가 주장한 내용과 다른 경우의 수도 이미 고려해서 옵션을 비교해 검토해봤어야 하고, ② 혹시 모를 예외적 상황도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하는 일이 '수학 문제의 해(解)'를 구하는 과정이 아닌 다음에야 100% 확신할 수 있는 답을 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만약에 저런 질문을 받고

“최선이 아닙니다.”라던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CEO로부터 듣게 될 대답은 뻔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럼 다시 검토하세요.” 내지는 “근데 왜 그런 걸 보고하는 거죠?” 일 거다.


그렇다고 해서 "최선입니다.", "확실합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 뒤로 이어질 어떤 질문에든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니까 쉽고 단순한 질문이라고 해서 간단히 대답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고 준비를 완벽히 했거나 대화의 분위기를 읽어가며 조심스레 커뮤니케이션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적당히 Yes와 No의 중간 어디쯤에서 CEO와 대화하며 필요한 결론으로 답변을 수렴해가게 된다.


내가 특정 조직의 리더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CEO는 집무실로 나를 불러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딱 한마디를 물어보았다.


“최 OO 님은 그 조직의 리더에 부합하는 실력을 갖고 있습니까?”


무섭기로 소문난 CEO와 처음으로 독대해야 했던 터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에게 주어진 질문은 예상과 달리 한없이 단순했다.

하지만 Yes라고 대답하면 “확실해요?”라고 근거를 물어볼 것 같고
No라고 대답하면 “그럼 그런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지.”라고 얘기를 들을 것 같았다.


어떻게 대답해도 그다음의 대화가 무슨 방향으로 이어질지 막막했던 순간에 나는 뭐라고 답을 할지 고민되었다. 당황스럽지만 생각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순간이었기에 나는 Yes와 No의 의미를 섞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CEO께서 리더들에게 요구하는 기대 수준이 워낙 높아서 어쩌면 그에 못 미칠 수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행히 내 대답을 들은 CEO는 더 이상의 확인 질문 없이 내 대답에 긍정해 “그래 열심히 일하면 되지”라고 질문을 마무리해 주었고, 내 당황스러움은 정리되었다.

이후의 대화는 CEO 본인이 기대하는 당부사항을 얘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렵고 불편한 자리에서 직설적으로 주어진 단순한 질문에 대해, 내 대답은 Yes와 No 중간 안전지대에 다행히 세이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순발력이란 게 항상 발휘될 수 있는 건 아니고, 질의응답 상대인 CEO 역시 사람에 따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질의 답변 과정에서의 결과는 케바케가 현실이다.


질의응답에 있어 질문은 공격이고 대답하는 사람은 수비를 하는 것과 같다.

질문을 할 사람이 언제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옛말에 "열 장정이 도둑 하나를 막기 힘들다."라고 한 것도 공격보다 수비에 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일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서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질문하는 사람이 그 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보고자가 준비한 노력도 수포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유형의 CEO는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세히 설명하려 들수록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챌린지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CEO가 보고자의 답변을 그런 의도로 인식하면 새로운 견해를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권위로 상대를 찍어누르려하게 된다.


CEO가 자신의 권위로 합리적인 답변을 무시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런 보고는 사실 실패한 보고일 수밖에 없다. 질문을 한 CEO와 답변을 한 보고자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 결과적으로 얻을 것이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권력관계가 기울어져 있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쉬운 질문이란 없다.

질문이 쉬울수록 답변에는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답변의 콘텐츠뿐 아니라 전달하는 방식까지 모두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질의응답이 잘 마무리되느냐 아니냐에 대한 결론은 권력자의 이해가 어디에서 멈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까 조직이 잘 되고 안 되고는 조직장이 어떤 사람인가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질문을 하고 성심껏 대답을 경청하는 CEO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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