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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낙원

by 랜덤초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前) 총리 윈스턴 처칠 경(卿)(Sir. Winston Churchill)은 대중을 향해 쉽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명연설로 유명했다.

그의 연설은 나치 독일의 침략에 맞서 영국 국민의 단결과 항전의지(抗戰意志)를 북돋우고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윈스턴 처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자 존경받는 정치지도자였던 한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엄청난 이력을 함께 갖고 있기도 하다.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이다.)


저서(著書) '2차 세계대전'으로 윈스턴 처칠은 1953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는 “역사적이고 전기(傳記)적인 글에서 보인 탁월한 묘사와, 고양된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는 빼어난 웅변술”이라고 발표되었다. (for his mastery of historical and biographical description as well as for brilliant oratory in defending exalted human values)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그의 언변과 문장력으로 윈스턴 처칠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수많은 명언과 명문장을 남겼다.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다.

The price of greatness is responsibility.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필요한 일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It is no use saying, "We are doing our best." You have got to succeed in doing what is necessary.


연(鳶)은 순풍(順風)이 아니라 역풍(逆風)에 가장 높이 난다.

Kites rise highest against the wind - not with it.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A pessimist sees the difficulty in every opportunity; an optimist sees the opportunity in every difficulty.


위와 같은 그의 문장들을 살펴보면 어쩌면 저렇게 단순한 몇 단어를 통해 수많은 것을 명확히 깨닫도록 함축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싶다.




이밖에도 그가 남긴 수많은 명문장(名文章) 중에서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글은 그가 '대중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에 대해 남긴 말이다.

대중 리더십에서 곧 스러져 없어질 거짓 희망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나쁜 실수는 없다.

There is no worse mistake in public leadership than to hold out false hopes soon to be swept away.


나는 그의 위 문장이 어떤 앞뒤 맥락에서 혹은 어떤 배경에서 무슨 상황을 빗대어 얘기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찾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시대를 되짚어 보면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란 게 분명한데도 평화를 지향한다는 대의로 포장하여 히틀러와 기만적 평화협상을 벌인 뮌헨협정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1938년 영국의 수상 체임벌린은 뮌헨에서 히틀러와 굴욕적 협상을 하고 돌아와 국민들에게 얘기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평안히 주무십시오."


이에 대해 처칠은 강하게 반발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불명예와 전쟁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들은 불명예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겪을 것이다." 협정 이후 1년도 못가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처칠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국가 단위의 일이 아닌 회사 조직에서도 리더십의 요체(要諦)는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금방 스러져 없어질 희망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최악의 리더십이란 건 크고 작은 사례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위로는 적당히 근사한 목표를 내세워서 자리를 보전하고 아래로는 조직원을 가혹하게 독려하면서도 정작 리더 스스로는 목표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도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리더십에 대한 처칠의 위 문장 바로 뒤에는 몇 마디 글이 더 이어진다.


영국 국민은 불굴의 용기와 활력으로 위험이나 불행에 맞설 수 있지만, 속았다거나 헛된 희망에 빠진 자들이 책임을 갖고 있는 걸 알면 매우 분하게 여길 것이다.

The British people can face peril or misfortune with fortitude and buoyancy, but they bitterly resent being deceived or finding that those responsible for their affairs are themselves dwelling in a fool's paradise.


※ "바보의 낙원(fool's paradise)에 살고 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live in a fool's paradise (콜린스 사전)

: to believe wrongly and stupidly that your situation is good, when really it is not


윈스턴 처칠의 글을 알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내가 매우 분한 마음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의 리더가 현실을 직시하는 실력, 미래를 앞서 보는 통찰, 심지어 솔직함도 보여주지 못하고 헛된 착각의 늪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구나 싶은 것이다.

그들이 그런 사람인 걸 차라리 모르고 살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분할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가 가까이에서 일하며 알고 겪은 경험이 이렇게 힘든 마음을 갖게 한 원인이었구나 말이다.


그나마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사실이 아닌 환상과 기대는 언젠가 무너지고 결국은 순리대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말이다.

다만 기대하건데 '바보의 낙원'에 머무르는 기간이 어서 지나가고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다들 가슴뛰는 마음으로 각자의 열정과 활력을 되찾는 날이 빨리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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