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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Apr 30. 2023

익숙한 것에 대하여

사 년쯤 전에 우리 가족은 따로 사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도합 7명이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다섯 식구에 부모님까지 7명이 움직이려니 해외여행은 엄두도 내기 힘들었고, 차를 가져가기도 적당치 않아 기차와 택시를 이용하는 뚜벅이 여행이 되었다. 


부산역에서 내리자마자 큰길 건너 초량동 168 계단 모노레일을 보려고 돼지국밥을 한 그릇씩 한 후, 초량동 이바구길을 찾아 걸었다.


오르막 길을 걷다 학교 옆을 지나던 중 담벼락에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걸 보게 되었다.

초량초등학교의 자랑으로 개그맨 이경규 님 얼굴이 그려져 있던 것이다.


낯선 동네에서 낯익은 사람의 얼굴을 보니 이유 없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학교 앞 이모저모를 살피느라 걸음이 느려졌다. 그때 후미에 선 아이들의 속도가 늦어지는 게 느껴졌다.


뒤돌아 가보니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 모여 서서 이것저것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뭐가 신기하다고 부산까지 와서 문방구에 환장을 하나 싶었더니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요즘 주변의 학교 앞에선 문방구를 보기 힘들다.

학교 정문 앞에 위치해 문구류와 팬씨 상품, 심지어 사행성 높은 뽑기 상품과 군것질거리까지 취급하던 추억 속 문방구는 이미 눈에 띄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보니 공책이나 필기도구 같은 문구류를 사려면 번화가에 위치한 대형서점이나 복합유통점을 찾게 되었다.


아마도 생각건대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초등학교 재적 학생수가 줄어들어 시장 자체가 작아진 것이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이지 싶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에 60명~70명씩 해서 한 학년에는 15반쯤, 학년 정원이 약 1천 명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학년이나 심지어 한 한교가 100명도 안 되는 학교도 많다는 걸 알고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시장이 1/10로 줄었으니 학교 앞 문방구가 보이지 않는 건 아쉬워도 당연한 일이지 싶다. 


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는 학생들이 오며 가며 들리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이름과 달리 분식점의 기능을 함께 제공하기도 했기에 문방구는 학생들이 자주 찾을 이유를 더욱 여러모로 제공하고 있었다.


지금의 편의점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취급 품목수를 자랑하던 문방구는 겹겹이 쌓인 상품과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물건들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도 주인아저씨는 어디 박혀있는지 모를 것들도 묻기만 하면 손쉽게 찾아내 주시는 '생활의 달인'급 관리 역량을 갖고 계셨다.



문방구 말고도 우체통, 공중전화, 비디오테이프 대여점, LP판매점, 사진현상소, 쌀집 등등...

추억의 장소들이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조금씩 사라져 가다가 이제는 찾기 힘들어진 추억의 장소들...

익숙한 장소는 사라져도 돌이켜 생각하면 그와 관련한 추억이 더 진해지는 건 아이러니다.

자주 생각나진 않아도 어쩌다 생각나면 잊고 지냈던 그 시간만큼 더 진하게 추억하게 되는 걸까?


조금씩 글로 써서 기억의 부스러기라도 남겨 놓으면 어느 순간 다시 발견하고 

더 진해진 추억을 곱씹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부모님과의 여행 역시 그때의 부산여행 이후로 코로나 때문에 뭐에 다시 다른 곳을 다녀올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여든을 넘기고 계신 두 분을 보면 더 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어야겠는데, 마음만큼 못하는 것 같아 더 아쉬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익숙했기에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것들이 사라진 걸 느끼면서

익숙한 것에 대해 익숙한 사람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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