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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Apr 27. 2023

잊고 싶은 문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학 유튜버 ‘궤도’를 처음 보게 되었다.

짧은 인터뷰 속에서 기-승-전-과학으로 모든 주제의 대화를 풀어가는 그의 괴랄한 능력은 왜 그가 화제의 유튜버인지 알게 하였다. 


그의 인터뷰 내용 중 프로그램 진행자인 조세호 님의 ‘꼴값時’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어찌어찌 조세호 님의 글이 결국 과학이란 설명을 하는 중에 '세계 7대 수학 난제(難題)'가 언급되었다. 

(7대 수학 난제 : 미국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 2000년 선정한 중요 미해결 수학 문제 7선)


"미안하지만 너가 혼자 해결하지 못할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생각 조금은 하지 않을까♡"

'조세호'님의 글에서는 상대방(조세호)에 대해 생각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았는데,

'궤도'님은 화자(話者)를 난제(難題)로 갖다 붙여 수학자들이 '난제'를 생각하길 바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당장 방송에서 듣기엔 그럴듯했는데 옮겨 적으려니 논리의 비약이 커 보이긴 하다.ㅋㅋ)

 

'궤도'님의 설명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수학자들이 난제가 풀리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오히려 바라는 경우가 많다는 부분이었다. 생각건대 아마도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이 먼저 그 난제를 풀어야 한다는 수학자로서의 목표와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일생을 그런 난제를 풀기 위해 바쳐왔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먼저 그 답을 찾아 공개하면 그만큼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증명하기 어려워 악명 높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Andrew John Wiles)'에 의해 증명되었을 때, 실제로 많은 수학자들이 그런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수학적 정리를 증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만나게 되는 여러 질문들 중에 풀지 못하는 난제를 만난다면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나 같은 경우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머릿속에 남겨두는 것은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문제는 피하고 싶고,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까먹고 잊어버리는 걸 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수행과 참선으로 도(道)를 깨우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들이 나처럼 일상생활 속에 마주하는 질문에 대해 끝까지 답을 구하기보다는 잊어버리는데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인생이 참 묘한 것이라서 

아무리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질문이 마음속에 남아있기도 한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 수도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더 글로리' 최종화에서 동은은 감옥에 간 연진을 면회 가서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동은    " … 너의 세상이 온통 나였으면 좋겠어.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뼈가 아리게 억울해하면서."

연진    " 억울해.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억울하지. 근데 그 말은 해도 내가 해야지. 네가 왜?" 

         (연진이 억울해해야 할 사실은 드라마 시청자에게만 보여진다.)

연진    " 뭐가 억울한데 내가? 뭔데? 뭐냐구? 내가 뭐가 억울한데? "

동은    " ... 이 감옥이 너의 지옥이길...  평생 넌 아무것도 모른 체 이 지옥에서 오래오래 살아주길 계속 비는 수밖에..."  

        (연진 뒤돌아 면회실을 나가는 동은에게 소리친다)

연진    " 뭔데? 내가 뭘 모르는데?  야!!!  문동은 이 X 년아!!! "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고 답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상대에겐 극한으로 고통스러운 형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서늘하게 공감되는 장면이었다.




학문적 문제이건 삶에서의 문제이건 난제를 만나면 가능한 돌아서 피해 가고 잊으려 생각하며 살아온 나였는데 어쩌다가 보니 그렇지 못하고 몇 가지 질문을 맘에 두고 살게 되었다.


스스로 답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이고,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외면하거나 피하고 있다.

누가 풀어도 같은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내용이라도 공개하고 내 문제를 풀어 줄 '앤드루 와일즈'가 나타나길 기다려 볼 텐데...  


나에게 문제를 낸 나의 '문동은'이 떠나 숨었으니 뭘 기대할까 싶은 심정이다.

문제를 내는 사람은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짐작이나 하고 그런 일을 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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