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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May 04. 2023

True Man's choice

사회 초년생 시절 미국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를 봤다.


큰 몸을 이코노미 좌석에 꾸겨 앉아 있다 보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고, 긴 비행시간을 때우려 기내 영화 프로그램을 고르다가 발견한 영화였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무슨 뮤지컬 장르의 쇼 프로그램인가 싶었는데, ‘짐 캐리’가 주연이란 사실을 알고는 시간 때우기에 어울릴 코미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니 ‘트루먼 쇼’는 내가 기대한 만큼 웃긴 코미디 영화가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을 중단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지막 엔딩을 볼 즈음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마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래된 영화지만 이제 새로 볼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음을 밝혀둔다.)


‘트루먼 쇼’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그걸 진짜라고 믿고 살던 주인공이 결국 사실을 알고 어떤 선택을 하는 지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요즘이야 관찰 예능 장르가 워낙 대세가 된 시대이지만, 1990년대 말 무렵 관찰 예능 프로그램은 매우 생소한 장르였다. 

기껏해야 ‘몰래카메라’처럼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반응을 살펴보는 정도랄까?


그런데 영화에선 주인공인 ‘트루먼’ 개인의 탄생부터 이후의 모든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만드는 상황을 묘사한다. 

지금 생각해도 그 영화적 상상력의 크기 그리고 영화 속 디테일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30년 인생을 성실히 살아온 '트루먼'은 그의 생활 속에서 이상한 사건 사고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뭔가 이상하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트루먼은 의구심을 해소하고 자유를 찾기 위해 태어나 성장한 마을을 떠나려 한다.  

물을 무서워하는 스스로의 트라우마까지 극복하며 폭풍우 치는 바다로 항한 트루먼은 마침내 그가 살아온 세계가 그의 생활을 관찰하는 TV프로그램 속 꾸며진 세트란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세상이 누군가의 통제로 만들어진 세계란 걸 알게 된 트루먼은 혼란에 빠지고 그때 세트를 떠나는 비상구 앞에서 ‘트루먼 쇼’를 기획하고 연출한 PD 크리스토프와 얘기하게 된다.

PD는 쇼를 계속 이어가려고 트루먼을 설득하려 시도하지만, 트루먼은 평소 사람들에게 늘 인사하던 방식대로 PD에게 작별을 고하고 세트를 떠난다.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night. Hahaha! Yeah!

늘 그렇듯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이 왜 그렇게 슬퍼 보였는지는 참 모를 일이다.




20여 년 전에 ‘트루먼쇼’를 처음 봤을 때, 

주인공 트루먼이 자유를 찾아 관찰 쇼의 세트장을 떠나는 모습은 마치 그가 최종적인 선택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는 서사로만 이해되었다. 

트루먼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나 역시도 그와 같은 상황에선 자유를 찾아 거짓으로 만들어진 환경을 벗어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 문득 ‘트루먼 쇼’의 결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트루먼의 입장이라면 모든 게 통제된 거짓이지만 안전한 세트의 생활을 버리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불확실한 바깥세상으로 선뜻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도 든다.


세상과 시간에 길들여져서일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졌길래 트루먼의 선택을 보는 관점이 변한 걸까?
 
트루먼처럼 극단적으로 통제된 가공의 세계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역시 어느 정도의 영역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 규칙과 시스템 안에서 그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 역시 회사가 정한 규율과 체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규율이나 시스템은 조직 내의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공평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에서와 같이 나를 둘러싼 환경은 어쩌면 나에게만 요구되는 환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도 있다.  

누군가에겐 다르게 적용되는 원칙이 나에게만 가혹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나는 당연하게 지키는 기준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세상이 생각처럼 당연하거나 일관된 기준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란 점은 우리도 간간히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질 때 트루먼처럼 이유를 더 찾고 사실을 더 갈구하며 인생을 바쳐 노력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트루먼의 선택이 새삼 더 대단해 보이게 된다.




영화 속에선 트루먼이 자유를 얻은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트루먼 쇼'의 세트를 떠난 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해진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이후는 관객의 상상 속에서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나만의 상상이지만 주인공의 이름이 하필 트루먼 인건 혹시 그가 진실을 갈구한 자유의지를 보여줬기에 True man의 의미를 가진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쨌건 그는 가짜의 삶보단 불확실하더라도 자신의 진짜 삶을 찾아 떠났으니 그렇게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런 생각 끝에 기대하건 데는 

트루먼이 힘든 세상에 상처받아 그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사실을 알고 나서 그가 선택한 자유의 대가가 후회와 실패로 채워진다면 그의 선택을 응원한 나 역시 너무 비참할 것만 같아서다.


선택을 어려워하는 나 대신에 트루먼이라도 정직한 선택 뒤에 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마무리되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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