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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Mar 11. 2023

합창(合唱)의 추억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선 반 대항 합창 대회가 열렸다.


당시 우리 담임 선생님은 체육 과목의 총각 선생님이셨는데, 키가 크고 외모가 훌륭해서 여학생들 뿐 아니라 뭇 여선생님들의 흠모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반들과 달리 우리 반은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지 못하고 음악선생님(女)으로부터 특별 합창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고마운(ㅜㅜ) 레슨 기회가 생겨버렸다.

합창 지도를 받을 때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학급 정원인) 60명이 넘는 한 반 학생들 모두가 책걸상을 뒤로 밀고 교단 쪽에 모여 줄 맞춰서 경연곡을 부르게 되었다.


합창 지도가 이어지는 동안 음악선생님은 교실 뒤편으로 몰아놓은 책상에 걸터 서서 우리 반의 합창을 들으셨다.

좁은 교실에 많은 학생들이 빽빽이 서서 노래를 부르니 대체 누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몇몇 친구들은 입만 벙긋거리기도 했고, 또 누구는 일부러 가사를 틀리게 부르기도 하는 등 장난치는 녀석들도 생겼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음악선생님은 장난치는 친구를 알아낼 수 있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계셨다. 

귀신같이 그런 장난을 치는 친구를 찾아내어 혼내시는데, 당시엔 교내 체벌금지가 시행되기 십수 년 전이었던 터라 물리력에 의한 학생 교화도 곧장 뒤따랐다.


한두 명의 친구가 시범케이스로 사랑의 교화(체벌)를 받는 모습을 보니, 반 전체는 긴장해서 합창 수업에 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반에는 장난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노래가 어려운 음치나 박치도 있었다.

나 역시 노래에 자신이 없던 터라 입을 작게 벌려 낮은 목소리로 티 나지 않게 따라 불렀는데, 그만 음악선생님께 딱 걸리고 말았다. 


“야! 너 크게 안 불러?”


소리는 작게 내면서 입만 크게 벌리려니 제대로 음이 나올 리가 없었고, 선생님은 지휘봉인지 몽둥이인지 싶은 무기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오셨다.

합창이 이어지는 동안 내 눈을 노려보며 내 앞에 바짝 서서 노래를 듣던 선생님은 알겠다는 듯 한숨을 쉬시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넌 저 뒷 줄로 가라. 입 크게 벌리고 소리 내지 마!!”


장난치는 것으로 오해받아 선생님께 맞는 건 아닐까 걱정한 건 기우였지만, 반 학생 전체 앞에서 음치임을 강제로 커밍아웃당하고 뒷줄로 쫓겨가게 된 건 다른 형태의 상처가 되었다.


그때 합창대회에서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합창 경연의 성적이 어땠는지는 아무 기억도 남지 않았지만 

그 여름의 덥고 눅눅한 교실 분위기와 뒷줄로 자리를 옮길 때의 기분은 영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장난으로 노래를 못 부른 게 아니란 건 아셨으니 합창 수업에 임하는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에 만족해야 하나?


졸업 후 한참을 지나서 만난 동창 녀석으로부터 그 음악선생님과 중2 때의 담임 선생님이 결혼하셨단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친구들은 '역시 사랑은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노력해야 이뤄지는구나' 하고 얘기들 했던 기억이 난다.


퇴근도 포기한 체 한창 반항적일 시기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 60여 명을 지휘봉 하나로 조련하시던 그 음악선생님은 우리 담임선생님과 결혼 후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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