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랜덤초이 Nov 18. 2023

선택의 덫

드라마 '무빙'을 보려고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원래 계획했던 드라마를 다 봤으니 이제는 구독을 해지할까 생각하던 차에 다른 드라마로 눈이 갔다.


제목은 '최악의 악'

포스터 이미지의 흘려 쓴 글씨체 때문에 처음엔 정확한 제목이 읽히지 않았다. 게다가 살짝 살펴본 시놉시스는 유덕화, 양조위 주연의 '무간도'가 연상되었다.  범죄조직에 잠입한 형사의 이야기라니 그 전형적인 설정이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 플러스 구독 해지를 미루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던 건 유튜브 쇼츠로 제공된 짧은 영상들이 꽤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쇼츠 영상 속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임성재'라는 배우의 존재였다.

드라마 '무빙'에서 '구룡포'를 배신하고 입이 찢어진 조폭 후배 '민기'로 나왔던 배우인데, '최악의 악'에서도 조폭 조직의 브레인 '최정배'로 등장한다.


두 드라마에 연달아 얼굴이 보이고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드라마에서 전혀 다른 말투와 감정선으로 극의 전개에 녹아들고 있어 새로운 연기파 배우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90년대의 시간과 강남이라는 지역 설정이 내가 경험한 추억의 시공간과 닿아 있어서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낯익은 지명과 학교 이름, 성당의 이름이 등장하다 보니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내가 겪은 현실 속의 일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지상파와 넷플릭스까지 여러 플랫폼의 드라마를 함께 보다 보니 아직 정주행을 마치지 못했지만 드라마 '최악의 악'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재밌는 캐릭터를 발견하여 그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활동하는 '강남연합' 조직은 부산을 근거지로 하는 전국구 폭력조직과 갈등을 겪고 대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부산 조직의 보스로 '독고영재' 배우(송동혁役)가 나오는데 그가 연기하는 보스의 화법(話法)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면 주관식의 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대답의 보기를 함께 얘기해 주고 객관식 답을 선택하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 아들한테 와 그리 당했노? 1번 워낙 머리가 나빠서 당했다. 2번 그날만 유독 머리가 나빠서 당했다."


결국은 머리가 나빠서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답을 선택하라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저런 뻔한 질문법을 상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조폭 두목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설정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속의 설정을 재밌게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이유는 저런 식으로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질문의 방식이 꼭 조폭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상대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이자 권리를 준 것 같아도사실은 정해진 답변을 강요하고 특정한 행동을 취하도록 몰아가는... 그런 케이스는 주변에서 쉽게 관찰된다.


드라마 속에서는 질문을 받은 '기철(위하준扮)'이 제3의 답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권력을 가진 상대가 던진 선택 요구에 그 외의 답변을 내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자 어떻게 할래?

1번  내가 원하는 걸 짐작하고 네가 책임져서 하는 것처럼 만들어 봐라 

2번  네가 책임질 수 없겠으면 다른 사람이 하도록 물러나라"


저런 질문이 주는 선택은 기회가 아니라 외통수로 몰아넣는 덫 같은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요구로 인해 조직은 결국 권력을 가진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치밀하고 잔인할 때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무소음 수저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