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CEO는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때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을 제일 먼저 챙겨서 확인했다.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버틴다(or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일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나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니까 CEO가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특정한 일에 필요한 전문성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결국은 전문성을 몇몇 경영진이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관적 판단은 특정인의 이전 직장 근무이력과 일부 평판 조회를 수단으로 한다.
자격증이나 학위 같은 특정한 자격요건을 필요로 하는 전문성은 확인하기 쉽다. 이미 서류로 증빙할 수 있는 형태의 자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은 그런 필요조건 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런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 중에서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까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조직 내에서 그런 정도의 특정한 전문역량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조직 내에 축적된 기록과 평판이 존재하니까 적정한 사람을 찾기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조직 밖에서 특정한 책임을 맡을 사람을 찾으려고 할 때면 그 성공 가능성은 더 낮아지는 게 당연하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찾게 되는 평판이란 것은 이직을 위해 실제 이상으로 포장된 내용을 접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반대로 특정 분야의 진짜 전문가에게도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는 모험이 되기 쉽다.
의사/변호사/컨설턴트 같은 전문직군처럼 소속이 바뀌어도 개인의 역량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일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일해야 하는 회사에서는 이직하는 조직이 가진 일하는 문화와 시스템의 영향을 개인도 받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벼룩도 낮은 공간에 두어 한계를 두면 그 이상 점프하지 못하는 벼룩효과(the flea effect)라는 게 있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전문가라도 이직한 회사의 환경과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이 있듯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정말 훌륭한 품종의 포도를 구해와 봤자 원래 쓰던 통에 넣어 숙성시키면 그 맛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를 찾아와도 회사가 가진 기존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를 보기는 참 힘들다.
그래서일까 옛날에도 어느 사상가는 외부 전문가를 중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경우가 있었다.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가 나라가 망하는 징조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十六. 임금이 나라 안의 뛰어난 선비를 중용(重用) 하지 않고 나라 밖의 사람에게 관직과 봉토(封土)를 주며, 공로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명성만을 좇아 진퇴를 결정하며, 다른 나라에서 데려온 사람만을 믿고 그 지위를 높게 하여 나라 안의 신하들보다 귀하게 만들면 그 나라는 망한다."
그게 꼭 국가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회사라는 일반적인 조직 역시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나는 가끔 우리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전문가인가 하는 게 궁금했었다.
직원들은 10년, 20년 이상을 해당 산업영역에서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해왔는데 최고경영자는 회사에서 3년, 5년 정도 일하는 것이 관례였기에 그렇다.
물론 오래 일하는 게 전문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짧은 시간을 조직에 몸 담고 일하는 최고경영자가 나름의 성과를 위해 하는 일들은 늘 미완의 시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나를 의문스럽게 했다.
적당히 성과로 주장할 수 있는 일을 꾸며 새로운 시도에 자원을 투입하고, 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2~3년을 기다리다 보면 몇몇 실패를 겪고, 그러고 나서 적당히 의미 있는 레슨을 얻었다는 식으로 타협하여 마무리하는 일을 너무 자주 봐왔다.
적어도 그들이 그런 경험을 회사 안에 제대로 된 레슨으로 남기기만 하더라도 내가 그런 의문을 갖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나간 실패는 남의 실패이니 까맣게 잊고 또는 감추고, 또다시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반복하려고 새로운 전문가를 뽑는 게 제대로 된 노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전문성을 강조한 최고경영자는 진짜 전문성 있는 CEO였을까 하는 게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약에 CEO라는 게 성과보다는 시도로 평가받는 사람, 직접 책임을 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사람이라면 그는 탁월한 CEO였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리더가 그런 전문성으로 조직을 통괄하고 직원들을 이끈다는 건 전혀 반갑지 않다.
오히려 한없이 서글픈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회사에 남겨진 전임 CEO의 유산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욱 확고해진다.
시작하고는 마무리 짓지도 못해 숨겨진 체 호흡기 달고 유지하는 열위의 서비스들, 웃돈을 주고 인수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자회사, 전문성을 근거로 영입하여 전문성과 상관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직원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뒤태가 훌륭한 사람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떠나간 자리 남기고 간 일들이 제대로 된 모습일 때에야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이 진짜 의미 있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을 맡길 때 유난히 전문성을 찾던 그분을 생각하면 CEO로서의 전문성을 끝내 갖추지 못한 것인가 생각이 든다.
내게 묻던 당신의 질문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전문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