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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Dec 18. 2023

쉽게 일하는 법

쉽게 일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래부터 쉬운 일이라면 굳이 쉽게 일하는 방법을 찾지 않겠지만, 어려운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일하는 법'이란 주제가 혹할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듯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요령이란 건 찾기 어렵다는 게 상식이다.


간혹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어려운 일들을 정말 쉽게 해내는 달인을 목격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달인을 찾았을 때, 우리는 그들이 해내는 어려운 일을 보통의 사람들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런 달인의 능력을 갖게 되기까지 남달리 노력한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음식의 달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레시피를 TV에 고스란히 공개하지만,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재료 준비와 조리 과정을 지켜보고 나면 혹시 방법을 알더라도 도저히 흉내 내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쉬운 일은 쉽게 어려운 일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다는 게 상식이다.

참 쉽게 쉽게 농구하는 '마이클 조던'도, 만화처럼 야구하는 '오타니 쇼헤이'도, 프리미어 리그를 주름잡는 '손흥민'도 쉽게 운동하는 게 아니라 재능을 바탕으로 죽기로 노력해 온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감내하여 결국 일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달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변을 살펴보면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어려운 일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임원은 목표를 세분화하여 성과를 만드는 달인이었다.

쉽게 예를 들어 대기업 식품회사에서 새롭게 육개장 메뉴를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하자.

그는 최종적으로 육개장 메뉴 개발까지의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 중간 과정을 세분화하여 시간을 길게 끌고 자신의 역할을 그중 한 단계에 집중하여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음식은 좋은 재료가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고객과 시장의 경쟁 제품을 조사한 결과, 특히 육개장은 좋은 소고기와 신선한 파가 맛을 결정하는 주재료란 게 분명합니다. 주요 산지의 식재료를 찾아 테이스팅 하고 최적의 공급처를 찾아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그 접근 과정에 대해 부인할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다음엔 또 이런 식이다.

"횡성, 태백, 강경, 정읍 등 주요 소고기 생산지 경매장과 진도, 제주, 통영 등 이름난 파 경작지에서 계절에 따라 출하되는 식자재를 구해 최적의 배합을 연구했습니다."

또 이런 얘기를 들으면 해당 과정까지의 접근을 이해해 주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세분화 한 접근방법이 옳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시판할 만한 육개장의 품질과 경제성을 갖췄는가 하는 문제의 답은 여전히 없다.


결국 당연한 얘기를 설명하며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고, 세분화된 과정 상의 미션을 달성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궁극적인 성과는 따져보지도 못하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혹시나 CEO가 실력 있는 전문가라서 "다 모르겠고 그냥 육개장 한 그릇 끓여 와 봐" 해서 먹어본다면 금방 알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대기업 조직에선 일을 시킨 사람도 그만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세분화해서 일하는 각 단계가 이해가 되면, 전체적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미뤄지면서 서로에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과정 상의 안심을 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결국엔 CEO가 바뀌던지 해당 임원이 직책을 옮기면서 폭탄은 다음 사람에게 인계된다.




또 다른 어떤 임원은 목표를 위한 리소스를 과장하여 성과를 만들기도 한다.

적당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형 음식점의 경우라고 예를 들어보겠다.


CEO가 새로운 매장 출점을 위해 강남에 새로 생긴 대형 복합상가 건물에 매장을 계약해 오라고 한다.

여러 업체들의 수요가 있어 매장 임대 계약을 따오는 것 자체가 성과로 보일만한 일이었다.


월임대료가 5억쯤인 매장이지만 다른 경쟁업체들과의 입찰에서 밀릴 것을 걱정한 임원은 CEO에게 해당 매장 임대료로 10억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건물 주변 상권을 조사해 보니 단위 면적당 매출이 저희 회사 대표 매장보다 서너 배 더 많은 매출이 나올 수 있다고 보입니다. 다른 경쟁 업체도 대부분 10억 전후의 입찰가를 쓸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강남권의 저희 경쟁력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강남 지역을 담당하는 영업 1팀도 해당 매장의 임차를 꼭 원하고 있습니다."


비록 통상의 주변 시세보다 두 배나 되는 임대료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로 임대료를 비싸게 줘야 할 근거를 만들어 손쉽게 낙찰받으려는 것이다.


경쟁사나 자사의 영업 1팀도 부담스러운 목표일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진심을 CEO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매장 개발을 담당하는 임원이 하는 얘기가 곧 진실처럼 보인다.


매장 개발이 역할인 임원은 매장을 얻은 성과만 강조할 뿐, 매장 운영의 성과는 영업팀의 소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나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그건 영업팀의 능력 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남보다 두 배의 가격을 부르니 매장은 당연히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매장에서 임대료를 커버할 수 있는 매출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회사는 장기적으로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앞서 예를 든 두 가지 케이스에서 사람들은 손쉽게 성과를 주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성과를 인정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성과와 연계된 '일'의 최종적인 마무리까지를 연결해서 생각하면 그런 성과는 진짜 성과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실패의 씨앗을 뿌린 것에 다름없다.  

그런 가짜 성과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조직에 미치는 해악이 그 한 건의 결과로 끝나지 않는다. 

너도 나도 잠깐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일을 벌여서 진짜의 성과를 만들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그런 일들의 결과는 회사 전체에 누적된다.


요령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성과를 인정받으면, 누가 어렵고 오래 걸리는 힘든 일을 맡아서 하려 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모름지기 옛 현자들은 나라가 번성하려면 신상필벌이 바로서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은 공을 세운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을 주고, 죄를 지은 자한테는 반드시 처벌을 준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신상필벌을 이야기할 때 '상'과 '벌'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상필벌에서 진짜 주목할 글자는 '신'과 '필'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공을 세웠으면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란 믿음,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벌을 받겠구나 하는 믿음.


원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행이 반드시 그렇게 이뤄져야만 본보기가 되어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건대 '어려운 일을 한 것처럼 속여 성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벌을 받고, '어렵게 노력해서 당연히 만들어져야 할 성과를 만드는 사람들'이 꼭 상을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과정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어렵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미련하거나 가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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