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해철 님이 속했던 그룹 '넥스트'가 발표한 노래 ‘날아라 병아리’는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병아리를 팔던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다.
삐약삐약 울어대는 귀여운 병아리를 갖고 싶어 코 묻은 돈을 꺼내 한두 마리를 사서 집에 데려가면
병아리는 얼마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죽음이 뭔지 이별이 뭔지도 모를 어린 나이의 아이들로서는 병아리의 죽음이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처음 겪는 사별(死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해철 님의 노랫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감정이 되살아나 그 가사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당시 TV 뉴스에서는 초등학교 앞에서 돈을 받고 병아리를 파는 모습을 보도하면서
생명경시의 비윤리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하고 그 상업적 행태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그런 부정적 시각에 공감했고 요즘에는 학교 앞에서 병아리가 판매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그 이면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조명하는 영상을 보고 나니 나에게 또 다른 감정이 생겼다.
사실 학교 앞에서 팔리던 병아리는 모두 수평아리(수컷)였다고 한다.
병아리가 부화하면 암수를 감별하여 암평아리는 사육의 대상이 되지만, 수평아리는 바로 도태시킨다고 한다.
암컷은 살도 잘 붙고 알을 낳을 수 있지만 수컷은 그렇지 못하니 사료를 주어 키울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수평아리를 도태시키는 방법 역시 매우 끔찍하여 감별이 끝나자마자 살아있는 체로 즉시 분쇄기에 넣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학교 앞의 노점상 아저씨가 데리고 다니던 수평아리들은 그 과정에서 판매 목적으로 유통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에게 팔리기라도 하면 그 병아리는 조금이나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극히 일부의 경우지만 어떤 병아리는 늠름한 장닭이 될 때까지 생존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전체의 배경과 결과를 함께 보면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것은
뉴스에서 본 것처럼 생명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비윤리적으로 다루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강제로 도태될 비극적 운명의 병아리들에게 실낱 갖은 희망을 줄 수 있는 구원적 행위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적어도 학교 앞의 병아리 장수 아저씨를 상업적이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기르던 병아리의 케이스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8살 고은이가 다니던 학교는 운동장 한 편의 닭장에서 병아리를 길렀다.
교감선생님은 아이들이 노점에서 산 병아리들이 불쌍해 보였고, 집에서 병아리를 기르지 못하게 된 아이들을 위해 본인의 양계 경험을 살려 학교에 병아리가 지낼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던 고은이는 병아리를 보기 위해 자주 닭장을 구경했고, 비가 오면 닭장의 지붕에 상자 골판지를 덮어 줄 정도로 애정이 컸다.
어느 날 고은이는 학교로 자신을 데리러 올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병아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닭장 앞 풀밭까지 병아리들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닭장의 문을 조금 열어서 병아리들이 오고 갈 정도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준 후, 때맞춰 찾아오신 어머니 손을 잡고 고은이는 안심하며 귀가했다.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 고은이는 닭장 안이 텅 비어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 닭장 앞에서 5학년 언니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길고양이들이 닭장으로 들어와서 병아리를 물어갔대... 아침에 교감선생님이 닭장을 청소하시..."
고은이는 그 얘기를 듣고 혹시나 본인이 닭장의 문을 열어뒀기 때문이란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드니 나쁜 상상은 계속 고은이의 마음을 괴롭혔고, 죄책감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갔다.
고은이는 병아리를 위해 선한 의도로 닭장의 문을 아주 조금 열어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병아리는 끔찍한 최후를 마주했고 고은이는 힘든 마음의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이었다.
참 묘한 일이다.
누군가는 상업적인 목적에서 이익을 좇아하는 행동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또 누군가는 아주 선한 의도로 일을 해도 결과적으로는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는 그래서 의도만으로 평가할 수 없고
결과만으로 평가해서도 안될 일인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는
먼저 속단하기 전에 스스로 겸손한 자세로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먼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p.s. 고은이의 이야기는 상상을 더해 만든 픽션이므로, 혹시라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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