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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Sep 21. 2020

오싹한 제사(祭祀)

강화길의 <음복>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는 조상의 기일이 되거나 명절이 되면 제사를 드리곤 한다.

제사 풍경은 각 가족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유불선을 떠나 공허한 가치관만 남은 일부 제사 문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제사 문화를 재고하게 한다.




강화길의 <음복>은 제사를 둘러싼 한 가정의 가부장 문화 답습을 인물 간 긴장 관계로 풀어낸 스릴러다. 가족 서사에 제사를 주제로 하는데, 장르가 스릴러라 참신하다. 무리 없이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소름 돋는 결말에 다다른다.


""그런데 애는 안 낳아?"

"네?"

느닷없는 질문에 정신이 들었다. 아마 그날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묻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들은 바람에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

네?

그러나 고모는,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말해주었다.

"아기 말이야, 아기, 안 낳아?"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사람이구나." (p. 11)


작 중 '며느리' 나는 제사를 위해 모인 시댁에서 며느리를 외톨이로 만드는 시고모의   말에 흠칫한다.

그러나 곧 시고모는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는다.


"고모는 시어머니에게 빨리 제사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저 빨리 끝내고 집에 갈래요."

남편이 놀란 목소리로 고모에게 말했다.

"벌써요? 아직 아홉 시도 안 됐는데요?"

결국 고모는 짜증이 오를 대로 오른 목소리로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우리 늙은 거 안 보이니? 피곤하니까 일찍 끝내고 집에 가야지. 그리고 항상 일찍 시작해서 열 시 전에 끝냈어. 하긴 너는 전혀 모르겠지만."

사실이었다. 그는 살면서 제사에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날 뭐했는데?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공부하고, 학원 가고 친구들 만나고 …… 뭐했지?"" (pp. 19~20)


곧 며느리인 나는 시고모도 제사를 준비하는 부녀자라는 사실을, 또 방에만 있던 시아버지를 포함해 남자는 이 가족의 제사에서 가사 의무를 면제받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자들의 제사 준비는 가사 의무 전복의 클리셰로 흔히 쓰인다 ⓒ KBS, 살림남




낯설지도 않고 달갑지도 않은 제사 풍경에 진저리가 난 나는 눈치만 보고 있는데, 결국 사달이 난다.


"그 순간 할머니가 고모에게 소리를 질렀다.

",  정원이(작 중 시고모) 재수시키지 마라. 주제를 알아야지. 지가 무슨 약대를 간다고."

나는 숨을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괴로웠다. 그때 시아버지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더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할머니가 고모의 손을 다시 꽉 잡고 있는 걸 보았다. 있는 힘을 다해 아주 힘껏. 나는 도저히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어서 재빨리 남편에게 속삭였다. 나가자. 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야? 나는 남편을 올려다봤다. 그가 참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들은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심하게 충격을 받은   자리에 굳어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야, 나는 알아차렸다.

너, 아무것도 몰랐구나." (pp. 36~37)


치매가 있는 시할머니가 밥상에서 한 말에 온 가족이 얼어붙었다.

자신의 딸이 재수한다는 걸 남아 선호 논리로 묵살한 이 가족의 막후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수치심은 시고모뿐만 아니라 모두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족의 가부장 문화를 몇십 년의 세월 동안 모르고 있던 이 가족의 남자, 남편은 충격에 빠진다.

제사도 모르고, 자신의 누나가 재수를 왜 안 했는지도 몰랐던 남편은 이 가족의 진짜 중심이 아니라 애물단지였던 것도 눈치 빠른 나, '며느리'가 먼저 알아챈다.




요란한 와중에 시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눈빛은 이 가족의 진실을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시어머니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내게 미소를 지었다. 몇 분 후에 나는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정우(작 중 남편)  모르게  .' 시어머니가 그의 등에서 손을 내렸다. 나는 섬찟 놀라  자리에 섰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의 얼굴에서 걱정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서히, 고요하게, 모든 그늘이 완전히 …… 사라져 버리는 것을." (p. 37)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제 이 가족의 가부장 문화 답습의 전통을 이어받게 된 나는 속으로 독백한다.


"왜냐하면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그런데 말이야.

과연 그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pp. 38~39)


고부 사이를 단절해서 중재한다는 고부 관계 해결사 ⓒ MBN, 동치미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나는 어둠 속에서 말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그날을 떠올린다. 이 이야기를 계속 중얼거린다. 너. 너와 나로 인한 너. 무심코 생각하면 나를 닮은 모습으로 불쑥 떠오르는 너. … 하지만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부디 너를 위해 이것만큼은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날 대답했던 거야. 이것이 너의 드라마, 복이 되길 바라며.


어둠 속에서 나는 대답했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참…… 시시하지?" (p. 39)


나는 미래에 태어날 딸에게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좋겠다'라고 속삭인다.

자신의 딸은 이 가족의 가부장 문화에서 무지로울 수 있기를, 구습을 답습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강화길의 <음복>은 일부 남성 중심 문화의 단면에 대해 제사를 상징으로 삼아 그려낸 작품이다.

단순히 남-녀, 아들-딸의 성별 정치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한 문화를 조명하고 사유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가족이 이런 풍경 일리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사 준비로 대변되는 집안 사정은 구태여 관여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의 눈치 싸움으로 남겨져 있었던 반면, 그런 건 모르고 싶고 또 몰라도 되는 남자들의 무지는 참신한 소설 주제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부장 문화에 문제를 느끼면서도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문화의 답습에 선택이 불가피해 냉소와 저주만 남은 작 중 '' 보며 느낀 여자의 울분은 제사상을 차리는 어머니를 보는 것보다 생생했다.

작 중에서 문제를 교정하지 않고 담담히 전개하며  것의 문제를 드러내는 구성도 이에 한몫했을 것이다.


추석이 곧인데, 오싹한 제사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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