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Feb 12. 2021

마지막 수업,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거의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얼마 전 정리하고.

새 직장에 가게 됐다.


새로운 곳에서 일한다는 설렘도 있지만,

역시 제자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앞섰다.


코로나 전, 대강당에서 다정한 모습의 환이와 재현이.


마지막 수업은 뭐가 좋을까.

아직 문법 수업 중이었다.

아직 아이들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자음 체계를 더 가르칠까?


글쎄.

나쁘지 않지만, 내키진 않는다.


지난번 감명 깊게 읽은 박완서 작가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같이 읽고 싶다.


체력 평가 중. 축구부에 속한 아이들이 가장 빛나는 시간. '꼴찌'가 1등이 되는 순간.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공부 잔소리를 쉴 새 없이 듣는 종업식 전 읽어둬도 좋을 것 같아서.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만나서 하기 부끄러운 말을 차분히 글로 써내려 갈 수 있는 온라인 수업에 올려본다.


우리 학교 시설은 안 좋아도, 급식은 맛있거든요! 아이들 몇 마디에 담긴 진심이 날카롭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쉬운 소식을 전할까 합니다.


오늘이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인데요.

여러분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네요.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거든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Incognito라는 밴드의 "A Shade of Blue"라는 곡입니다.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A lifetime waiting for the light to shine

Suddenly you were here,

like an angel appeared"


(밝게 빛나는 순간을 평생 기다려 왔어

그런데 너희들을 만나게 됐지

마치 천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말이야)


"Looked around and I found You were gone

Where everything real has turned to stone

And the songbird has flown

Now I know a rose can change a shade of blue"


(다시 보니 곧 너희들과 이별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됐지

모든 것들이 무뚝뚝한 돌로 변하는 느낌이랄까

노래하는 작은 새들은 곧 날아갈 거야

이제 나는 아름다운 장미가 그림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여러분과의 만남은 저에게 꿈같았어요.

쉬지 않고 노래하는 여러분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성숙한 이별도 필요하겠지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수업을 진행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수필을 한 편 써보려 합니다.

첨부한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편집본을 보고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느껴보고, 써내려 가보세요.

첫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잡아보세요.

음미하세요. 그리고 다시 써보세요. 다시 느껴보세요.


제출할 곳은 없습니다.

그만큼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써보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늘 여러분의 성장과 행복을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김승일 올림




참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학교 마지막 수업일이자, 이직한 회사 첫 출근일, 그리고 내 생일.

그냥 똑같은 하루일 뿐인데 의미도 많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매한가지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친구들, 동료들, 제자들, 인생 선후배들과 안부 묻기.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보내기.


이별도, 축하도, 생일도 뭐 별 것 있을까.

그냥 하루 딱 골라 안부를 서로 묻는 날.


'잘 살자'


그 한 마디면 됐다.


이제 다시 새 시작.


'잘 하자'


미처 담지 못한 말들이 입 주변에 맴돈다.




https://youtu.be/lrnB9ph4l9c

ⓒ Incognito, A shade of blue.
작가의 이전글 서태지를 모르는 세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