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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Oct 04. 2021

자하문 오후 4시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지나가고,

다행스러운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같이 드는 요즘.


긴 연휴를 술로 지내다 마지막 날 자하문으로 산책을 나선다.



비가 올 듯 말 듯 어둑어둑

검은색으로 포장되지 않은 도로와 낮고 간판 없는 건물들은 서울 한 복판에 있지만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최근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프랑스 예능,

'당신 집에서 잘게요(J'irai domir chez vous)'에 소개된 서울과는 딴 판인 자하문에서 오래된 장롱 냄새를 맡는다.


‘소주?’, 인사도 생략하고 마실 것 먹을 것을 나누는 게 한국의 정이라며 사회자가 소개한다.

요즘엔 정도 정 나름이지. 외지인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 확실하다.

나도 참 바뀌었다.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당신도 방송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온다.



아는 사람이 잠시 작업하고 있다는 스튜디오에 들러본다.


몸으로 표현하는 희망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노숙자와 천사를 찍는다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으로 담기란..

무엇보다 나를 속이지 않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자하문 언덕을 지나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지나친다. 먹자골목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즐비하던 인파가 없어, 보기에는 영락없는 서울 골목길이다.

길에 담길 만큼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고 편안하다.



골목길을 한 시간 넘게 걷다보니 자연스레 카페를 찾게 된다.

한적한 산책을 마치고 스타벅스에 갈 순 없다싶어 발품을 파니 좋은 곳을 찾게 됐다.


고양이 두 마리와 어두운 실내, 나무 테이블과 의자, 피아노와 책들. 잘 나있는 창까지.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배치한 것이 맘에 든다.



일 하려고 가져온 노트북을 꺼내기 싫어지는 곳이다.

머리 식힐 때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몇 장 읽다 보니 영국 뮤지션들의 나른한 노래와 함께, 비가 창문을 때린다.


자하문 오후 4시, 나는 아이도 아니고 노숙자도 아니지만, 내 몸으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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