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Jan 26. 2022

먼 곳의 내게

여기저기 뒤적이다 우연히 본 글.

<심리학자가 추천하는 정신건강에 좋은 행동들>

건조기에서 꺼낸 따듯한 수건, 초콜릿, 얼굴이 아플 정도로 크게 웃기, 좋아하는 노래 듣기, 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있기, 멀리서  전화.

다 좋아 보이네. 내 맘에 드는 건 멀리서 온 전화.




전화한 일이라곤 종일 내가 급해서 전화한 ,   확인해달라고 전화가  , 안부를 핑계 삼아  부친  확인해보라는 전화.

어릴 때 맘 편히 지내던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올 리는 없으니, 내가 걸어봐야지.

아직 연락하는 놈, 서먹해진 놈, 싸운 한두 놈을 빼고. 맘에 드는 한 놈 찾은 뒤 생각해보니 그놈은 내일 임용 2차 시험을 보기로 돼있다.


그래도 마침 오랜만에 소식을 듣게 된 친구에게 연락이 와 두서없이 긴 문자를 보내본다. 요즘 내 마음과 궁금한 네 안부, 편지 쓰는 법을 배웠으니 날씨 얘기와 건강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보고 싶다는 말도 꼭 붙이고, 조만간 보자는 말은 우선 뺀다.

누구나 전화기를 자주 보니까. 곧 답이 온다. 긴 두 문자 사이로 그 시절 추억들이 스며든다. 그때만 해도 세상이 꽃밭이었는데 지금 느끼기엔 꽤 바뀐 것도 같다.




멀리 있는 것만 같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사실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 쓴 물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책도 읽고, 일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지만, 그렇게 내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요즘 번뇌가 걷잡을 수 없어서, 날 달래는 본능이었을까.

요즘따라 왠지 뒷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문을 더 잡아주고 싶고, 인사도 더 밝게 하고 싶고, 고생하는 동료들을 보면 더 웃어주고 싶다. 분해서 눈물을 흘리는 선배를 보면 옆에 앉아 울고 싶다. 아마 같은 이유겠지. 내가 받고 싶은 소소한 관심과 위로였을까.


먼 곳의 내게 쓰는 편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평생 받은 편지를 모두 모아놨는데, 내가 쓴 일기는 한 군데 딱 모아져 있지가 않다.

그래도 그것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다. 여기엔 내가 군인 때 쓴 일기, 저기엔 내가 가르칠 때 쓴 편지, 어디 서랍에서는 며칠 동안 쓰다만 다이어리.

과거의 나는 뭘 쓸 때면 매일 다짐을 했나 보다. 적당한 며칠간 감상 밑으로 뜬금없는 포부와 함께 당찬 느낌표. 매일 일기 쓰는 자신이 기특도 했나 보다.




멈춰버린 1초로 억울하게 메달을 따지 못한 펜싱 선수의 인터뷰를 본다. 그 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엘리트 지도자가 아닌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메달에만 집착하는 데서 자유롭고 싶었어요, 재미있는 펜싱을 다시 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동안 억울하게 멈춘 시간도 없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매고 있는 게 메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노메달 선수생활이면 아무렴 어떨까. 인생은 목적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가르쳤던 날들이 새삼 떠오른다.


부코스키는 이 세상의 문제가 머리 좋은 사람들의 의심 때문이라고 했다. 내 변명도 사실 내 자존감이 아니라 에고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만 건너편에서 보기에는 내 풀이 더 푸르러 보인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서서히 죽어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광부의 말처럼, 한 장의 나뭇잎처럼 늘 새로운 계획을 가지라는 선생의 말처럼, 애도하고 나온 뒤의 햇살이 운 좋은 삶이라는 누군가의 문장처럼, 먼 곳의 내게 긴 문자를 보내본다.


아뿔싸, 또 다짐을….


작가의 이전글 해파리 진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