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의 사정 2
*Trigger warning : 폭력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연이 실종됐다. 저수지에 핸드폰만 남긴 채. 처음엔 지연이 저수지에 빠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건 부모로서 제일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무너진 경화와 한준에게 형사는 위로인지 뭔지 모를 말을 해줬다. 저수지에 빠지면서 핸드폰만 따로 남겨두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다. 일부러 찾지 못하게 하려고 핸드폰만 남겨두고 아예 다른 곳으로 지연을 납치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에 기뻤다. 납치됐을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다. 내 딸이 저수지에 빠져 죽지 않았을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어쩌면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평생을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생긴 것이니까.
실종된 자녀의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장 희망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그것을 애타게 바라는 것.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화와 한준의 태도는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처음엔 지연이 단순 가출일 것이라며 시큰둥했던 한준은 점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힘들어하고 무력해했다. 반면, 생살을 찢긴 듯 괴로워했던 경화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지연은 살아있을 것이다. 빨리 지연을 찾아야 했다.
경찰은 저수지 근처를 폭넓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곧 저수지 근처에서 질척한 흙을 밟고 지나간 바퀴 자국이 발견되었다. 아직도 진흙이 채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퀴 자국이 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는 수사결과도 전해졌다. 형사 말대로 저수지에 빠진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에 경화가 안도했다.
경화에게 어떤 결심이 섰다. 10년 전 숙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었다. 엄마로서 초능력을 쓰는 것도, 쓰지 않는 것도 딸을 위해서이다. 이젠 오래 쓰지 않아 미천한 초능력이지만, 경화에겐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경화가 눈을 질끈 감고, 지연을 불렀다. 지연아, 제발 살아있다면 대답해 줘. 엄마에게 네가 있는 곳을 알려줘.
지연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수형이 폐창고의 입구에 불을 내려고 하고 있었다. 기름의 뚜껑을 따고 부으려다 말고, 지연 쪽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았다.
지연은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발버둥을 쳤다. 힘껏 발을 차 보았지만 몇 번씩이나 질기게 결박된 테이프를 도저히 찢어낼 수가 없었다. 수형이 지연에게 다가왔다.
“왜? 테이프 떼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지연은 비굴하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러자 수형이 지연의 입에 감겨 있던 테이프를 북 뜯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 쓰렸지만,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걸 고마워해야 했다. 테이프가 뜯기자마자 지연이 울먹이며 수형에게 물었다.
“수형아, 대체 왜 이래...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어? 초능인이라서? 텔레파시스트라서? 그게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야?”
수형은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해하는 지연의 모습이 퍽 웃기고 씁쓸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지연이 끝까지 억울하게 본인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도 재밌겠지만, 죽는 순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미치도록 원망하며 죽는 편이 더 짜릿할 것 같았다.
10년 전, 수형의 부모는 세탁소를 운영했다. 어린 초등학생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던 부부가 참변을 당한 것은, 똑같이 어렸던 두 초능인들의 치기 어린 불장난 때문이었다. 불을 만들어 공중에 띄웠다가 강에 빠뜨릴 생각이었는데, 그만 그 불씨가 세탁소 건물에 옮겨 붙었다. 그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건조한 빨랫감들은 모조리 땔감이 됐고, 조그만 불씨는 커다란 괴물이 되어 그대로 부부를 삼켰다.
불을 내고도 신고하지 않고 도망친 두 초능인 탓에 초동 대처가 매우 늦어졌다. 뒤늦게 발견한 행인이 신고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그때 그 불을 낸 초능인들이 신고라도 빨리 했으면 어쩌면 살 수 있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너무 어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똑같이 어렸던 수형은 그 사고로 순식간에 부모 전부를 잃어야 했는데.
그래서 수형은 결심했다. 그 초능인 둘에게 직접 복수하기로. 그 둘을 10년 전 엄마아빠가 있었을 뜨거운 불 속에 똑같이 집어넣고 싶었다.
그런데 열심히 복수를 준비하던 수형에게 몰랐던 사실이 전해졌다. 그 화재 현장에 목격자가 있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목격자이자 또 다른 피해자였다. 바로 옷을 맡기러 왔다가 같이 불 속에 갇힌 어떤 40대 여자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그 여자만 멀쩡히 살고, 수형의 부모는 모두 죽었다고 했다. 그 여자는 왜 혼자만 살아서 나가고, 부모님을 위해 신고조차 해주지 않았을까?
그 사실은 수형을 꽤 오랜 시간 괴롭혔다. 그 여자가 원망스러웠지만, 직접 불을 지른 것이 아닌 그 여자에게까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지연을 보고 수형은 알게 됐다. 대학 동기 지연의 엄마가 그 목격자와 이름이 같았다. 같이 세탁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는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서 딸까지 키운 그녀가 더욱이 원망스러웠다. 애써 눌러왔던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수형을 세차게 흔들었다. 마침 그녀도 빌어먹을 초능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수형의 결심이 섰다. 그녀가 제일 아끼는 것을 빼앗아야겠다고. 그녀는 평생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그녀 때문에 죽는 그녀의 딸은 죽는 순간 자신의 엄마를 원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평생 겪은 이 지옥 같은 감정을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다.
이미 수형은 지연을 죽이기로 오래 전에 결심했다. 수형은 지연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소름 끼치게 쓰다듬었다.
“너는 너희 엄마랑 너무 닮았거든.”
“뭐?”
“매사에 이기적인 게 똑같아. 너는 지금도 너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잖아. 초능인 중에 왜 하필 나야라고 생각하지?”
지연이 수형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엄마까지 끌어들여 모욕하는 수형이 혐오스러웠다. 진작에 선을 몇 번이고 넘었다지만, 이젠 잠시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최악의 괴물이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는 건들지 마.”
“하, 재밌네. 모녀의 같잖은 사랑. 네가 죽는 이유가 너희 엄마 때문이라는 걸 알아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지랄하지 마. 우리 엄마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자신과는 가끔 안 맞아도, 평생 아빠와 자신 뒷바라지하면서 헌신한 엄마가 어디 가서 나쁜 짓 하고 다녔을 리 없었다. 어차피 수형은 자신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 같으니, 납작하게 엎드려 빌기 싫었다. 고작 수형의 비위를 맞추려고 엄마를 욕보이기엔 지연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너희 엄마가 우리 엄마아빠를 버리고 그냥 가는 바람에, 우리 엄마아빠가 죽었다고!”
수형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고 싹싹 빌 줄 알았는데, 이기적인 목격자의 딸 주제에 지연은 굽힘이 없었다. 죽는 순간 자신을 죽게 한 엄마를 원망해야 하는데, 지연은 꼿꼿이 자신을 노려볼 뿐 자신의 엄마를 오히려 감싸고 있었다.
“우리 엄마 그럴 사람 아니야. 네가 착각한 거 아니고?”
“착각? 넌 너희 부모님 죽게 내버려 둬도 착각이란 소리 할 수 있어?”
착각, 그 말에 수형의 어떤 끈이 끊어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연은 자신의 인생의 전부인 명분마저 무시하고 있었다.
수형이 지연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연이 켁켁 소리를 내며 아파했다. 온몸이 묶여 있어서 저항도 못하니 이대로 목 졸라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곧 목을 놔주었다. 이렇게 죽이는 건 수형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조금 더 고통스럽게 죽여야 했다. 목까지 졸렸으니 몸을 사릴 줄 알았던 지연은 오히려 수형에게 소리쳤다.
“미친 새끼야. 그냥 죽여버리지! 안 죽이고 뭐 해!”
“뭐? 곧 죽는 주제에 꼴에 자존심 부리네. 걱정 마.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거니까.”
수형은 결심한듯 휘발유통을 열었다. 곧바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휘발유가 공장 바닥에 콸콸 쏟아졌다. 그래도 지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지연의 뜻밖의 반응이 수형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내 판단이 틀렸을 리가 없다. 난 정말 죽여야 할 사람들을 죽이는 거다. 이건 숭고한 복수다.
“그냥 사람 죽이고 싶은 살인귀 주제에 명분 있는 척하지 마.”
하, 숭고한 거사를 앞두고 있는데, 지연이 너무 거슬렸다. 어차피 죽일 거지만 자꾸만 화를 돋구었다. 수형이 걸어와 지연의 의자를 뻥 걷어찼다. 지연이 의자째로 날아갔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린 수형이 씩씩거리며 지연의 머리를 짓밟았다. 쓰러지며 쓸린 부분을 부딪힌 지연이 아파서 신음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바뀌었어. 네가 죽는 이유는 너 때문이야.”
수형은 폐공장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문 바깥에서 쓰러진 지연을 보며 텅 빈 눈동자로 쳐다봤다. 공장 안으로 성냥불을 던졌다. 지연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작은 성냥불은 수형이 뿌려놓은 휘발유를 따라 긴 불길을 이뤄 순식간에 입구를 막았다.
지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이대로 죽는구나.
더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자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숲길에서는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여기선 어떻게든 묶인 걸 풀어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그래서 더 공포스럽고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같이 갇힌 두 남자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두들겨 맞았고, 이미 불은 나갈 수 있는 입구를 모두 막고 점점 형체를 불려 가는 중이었다.
지연은 포기한 채로 눈을 감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니 주마등처럼 지난 기억들이 지나갔다. 가장 생각나는 건 엄마와 아빠였다. 더군다나 새벽에 그런 쪽지를 두고 엄마 가슴을 찢어놓고 나온 것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으면 사는 동안만이라도 엄마를 웃게 만들걸.
지연의 눈에서 나온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엄마, 끝까지 불효하고 가서 미안해. 다음엔 나 같은 딸 낳지 마.
불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짙게 공장을 채우고 있었다. 점점 의식이 흐려져 가는 지연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지연의 귓가에 갑자기 울부짖는 목소리가 벼락처럼 쳤다.
‘지연아!’
엄마의 목소리였다. 지연이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당연히 곁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꿈도 주마등도 아니었다. 엄마가 텔레파시로 애타게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지연아! 엄마야! 살아있으면 제발 대답해!’
비로소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죽기 싫었다. 사실은 누구보다 살고 싶었다. 지연이 울부짖으며 경화를 목놓아 불렀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