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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Oct 22. 2024

히로인 경화 08

텔레파시스트





경찰서 안 분위기는 아비규환이었다. 실종자가 범죄에 노출됐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내부 인원들은 실시간 GPS를 보며 현장 인원에게 큰 소리로 지시하고 있었다. 한준도 초조한 지 아는 인맥들을 총동원하여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난리통 속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건 경화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억장이 무너질 듯 오열하던 경화는 조용히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들이 그녀를 안타깝다는 듯 힐끔댔다. 딸이 실종된 고통이 너무 커서 잠깐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경화는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전기 신호에만 집중했다. 지연이 살아있다면 필시 자신을 부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간절하게 눈을 감고 집중하던 그녀의 등골에 일순간 소름이 좍 끼쳤다. 진짜로 지연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연이었다. 자식의 목소리는 F등급의 하급 초능인이라도, 엄마라면 무조건 알 수밖에 없었다. 경화가 기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제 딸 살아있어요!”     


경화의 눈에 안도의 눈물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중요한 정보에 경찰들의 시선이 모두 경화에게 쏠렸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텔레파시로... 방금 그 애가 엄마! 하고 절 불렀어요.”     


뜻밖의 상황에 경찰들은 수군거리고, 한준은 옆에서 경화를 못 미덥게 쳐다봤다.      


“텔레파시스트셨습니까? 그러면 따님과 계속 교신할 수 있으십니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텔레파시로 어디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렇긴 한데... 집사람이 F등급이라서요. 텔레파시 질이 좋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어떻게든 지금은 따님의 안위가 우선이니까요. 어머님께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경찰의 부탁에 경화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초능력을 쓰지 않는 초능인이 갑자기 너무 초능력을 많이 쓰면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지금 상황에서 경화에게 전혀 고려할 바가 못되었다. 경화는 오로지 지연을 살리는 것만이 우선이었다. 그녀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지연아, 지금 어디에 있니? 네가 보이는 것을 모두 말해줘.’     


의식이 흐려지는 지연의 귓가에 경화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렸다. 얼른 엄마에게 어디 있다고 답해줘야 하는데, 엄마가 걱정할 텐데… 애석하게도 온몸에 힘이 없었다. 하루종일 굶고, 수형을 통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다가, 테이프로 온몸을 결박당해 넘어지고 다쳤다. 엄마에게 신호를 쏠 수 있는 기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새 불이 창고 벽을 녹이고, 지연과 남자들을 삼키려고 혀를 날름 뻗고 있었다. 지연의 앞까지 성큼 다가온 열기 때문에 너무 뜨거웠다. 검은 연기는 계속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지연이 괴로운 듯 힘겹게 기침했다.

     

‘지연아. 제발 대답해!’

‘엄마가 살려줄게.’     


경화는 계속해서 지연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경화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 전부 갈라지고 거의 짐승 소리처럼 변해 있었다. 별로 희망적이진 않았다. 이미 창고가 반쯤 불탔고 아마 경찰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마 경찰이 자신을 찾을 때쯤에는 까만 재로 발견되겠지. 그래도, 한 번만 엄마를 불러봐야겠다.     


지연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불!! 불!! 불이야!!”                                             







고통스럽게 머리를 싸매고 있던 경화가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머리에 피가 몰려 얼굴이 새빨개진 채였다. 형사가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은 경화를 걱정했다. 괜찮으세요? 경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지연이가 방금 ‘불’이라고 했어요!”

“네? 불이요?”

“네! 우리 지연이가 불 속에 있어요! 빨리 불이 나고 있는 곳들을 모두 찾아주세요!”

     

경화의 말에 경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빨리 위성으로 불나는 것 같은 위치 찍어봐. 소방에 전화해서 협조 요청 보내... 본인이 텔레파시스트라고 하는, 힘없는 50대 여자의 말이 전부 사실인 지 알 수 없었지만,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선 어떻게든 단서가 될만한 것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화가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평소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초능력을 쓴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화를 무너뜨린 것은 딸이 불 속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도 버겁고 견디기 힘들었다.

     

“당신, 괜찮아? 그만해. 너무 무리했어.”     


한준이 경화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으나 경화가 뿌리쳤다.      


“안돼. 나 지연이 찾아야 돼.”

“여기 지연이 안 찾고 싶은 사람 있어? 이제 텔레파시스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충분히 한 거야! 경찰이 빨리 찾아주길 바라야지.”

“이러다 늦으면? 우리 지연이가 죽고 있어. 지연이가 지금 불 속에 있다고!”

    

경화가 한준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썼다. 평소 한준에게 큰소리 한 번 친 적 없는 아내였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었다. 한준도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멈춰 섰다. 경화는 펑펑 울며 억지로 눈을 꼭 감았다. 어떻게든 지연과 다시 교신해야 했다. 뭐라도 더 들어야 했다.

     

‘제발 뭐라도 대답해 줘. 응?’

‘지연아, 제발 엄마 살려줘.’     


신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화는 지연에게 빌었다. 제발 한 번만 더 대답해 주길 간절히 빌었지만, 야속하게도 그 이후로 지연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희망과 절망이 계속 번갈아가며 그녀를 담금질했다. 지연이 살아있다는 희망에 잠시 붕 떴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처박히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아팠다.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희망을 버려선 안되었다. 자신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끝까지 지연이 돌아올 것이란 걸 믿는 최후의 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경화는 결심했다.     


“지연이 무의식을 읽어야겠어.”

“뭐? 너무 위험해! 당신 진짜 죽고 싶어? 이건 진짜 자살행위야.”     


경화의 말에 한준이 펄쩍 뛰었다. 초능력은 체력이나 정신력 같은 에너지라서 무한대로 쓸 수 없었다. 초능력을 한도 이상 쓰면 반드시 다른 에너지가 동나게 되는 법이었다. 경화는 F등급이므로 쓸 수 있는 초능력의 한도도 매우 낮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경화는 지연과 계속 교신한다고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쓴 상태였다. 여기서 지연의 무의식까지 읽으려고 한다면 경화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마치 10년 전 숙자가 그랬던 것처럼.

    

“상관없어. 나 살고 지연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경화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이제 이 상황이 되니까 알겠어. 10년 전에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네. 엄마가 되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결국 이번에도 한준은 경화의 결심은 꺾을 수가 없었다.



                      



무의식에 들어가는 것은 S급 텔레파시스트들도 어려운 일이었다. 무의식은 보여주기 싫어하는 마음의 공간이기 때문에, 억지로 보려고 해도 무의식 앞에선 텔레파시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길을 여는 것은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교감.       


경화는 모든 집중력을 지연의 무의식 속으로 던졌다. 울창한 숲 속에서 멀리 뛰고 있는 지연이 등장했다. 경화는 홀린 듯이 앨리스처럼 무의식의 지연을 쫓아갔다. 지연은 그런 경화를 마치 유인하는 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금세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잠깐의 모습조차 너무 그립고 반가워서 경화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죽을힘을 다 해 지연을 따라간 경화는 놀라서 그대로 멈춰 섰다. 지연이 자신 말고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지연은 남자를 따돌리기 위해 산속으로 방향을 틀었고, 곧바로 거리를 좁힌 남자가 지연의 뒤를 덮쳤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지연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곧 기절한 상태로 남자에게 들려 큰길로 나왔다. 상처를 가득 입은 딸을 보니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지만, 경화는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반드시 내 딸을 납치해 간 빌어먹을 남자애가 누군지 알아야 했다.  

   

곧 지연이 폐공장에 묶여 있는 장면으로 전환됐다. 아까 지연을 납치해 간 남자가 지연 앞에 서 있었다. 지연 뒤에는 모르는 남자 둘도 묶여 있었다. 남자 둘은 얼굴이 다 일그러질 정도로 피떡이 되어 있었다. 아마 납치범한테 맞은 것이겠지. 저 잔인한 놈이 우리 지연이를 납치했다니...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이 도저히 참담하고 끔찍해서 뒷장면들을 볼 수 없었다.

      

힘을 다 소진해서인지, 무의식 속 장면들이 너무 끔찍해서인지 결국 경화가 지연의 무의식에서 튕겨져 나왔다. 경화가 두통을 호소하며 주저앉았다. 어디인지 끝내 못 찾았다는 자책에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놈의 얼굴이 어딘가 본 것처럼 익숙했다.

     

순식간에 기억들이 지나갔다. 엉키고 섞이는 기억들. 신이 한 번은 경화를 도와주려는 모양인지, 어떤 장면이 특별하게 경화의 뇌리를 스쳤다. 경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손을 들었다.

     

“그 과대예요. 우리 딸 납치한 범인...”     


그리고 경화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캄캄하게 암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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