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다이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p. 47
자신이 어리숙한 사람이라는 신호를 보내 타인의 우위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깐깐하게 보이는 사람보다 어리숙하게 보이는 사람을 입맛대로 요리하기에 훨씬 쉬운 법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미숙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어떤 표식이 숨어 있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비난에 맞대응할 때 혹은 자기 비하적 표현을 사용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가? 꾸물거리며 일하는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내는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며 당신의 시간보다 그들의 시간에 더 많은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주는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들의 시간이 더 소중할 이유가 없다.
+ (중략)
남들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나약하게 행동하면 어떤 누구에게서도 존중받을 수 없다. 또한 스스로도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단호할수록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믿어다면 이제 그 생각을 버려라.
+
신념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 태도를 어떻게 생각할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사람들 대부분은 신념을 지키려는 당신의 태도를 지지할 것이다.
사람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는 약자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갖는다.
역설적이지만 다른 사람의 즉각적인 지지를 받는 행동을 따르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이란 거부당하기보다 인정받기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대한 바대로 행동하고 통념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밀어붙일 때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단, 그 신념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타인을 나의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이기주의자, 감정 뱀파이어, 자존감 도둑, 나르시시스트 등등으로 표현한다. 이런 다양한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 가까이에 유독 많다면? 마음이 약한 사람 즉 누군가가 당신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본인을 잘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 곁으로 모여드는 속성이 있다.

2년 전 근무지 변경으로 인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 곳에선 회사 사람을 제외하고 아는 사람은 학부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1명이 전부였다. 8년 전에 만나고 연락이 뜸했던 상황이라 오랜만의 만남이 두근거렸다. 예전 나의 기억으로는 정말 공주님 같은 친구였다. 나와 정반대로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육아에 충실한 전업 주부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소개로 만난 남편과의 안정된 결혼 생활도, 경제적 여유, 예쁜 두 아이까지~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친구를 처음 본 20살, 공주님 같았던 특유의 분위기는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굳건한 왕비처럼 단단하고 안정돼 보였다.
새로운 지역의 이사 주소를 생각할 때 그 친구 집과 가까운 곳을 1순위로 알아봤었다. 친구는 기꺼이 친한 부동산 사장님을 소개해주고, 같이 집을 봐주는 세심함으로 감동을 주었다. 집을 보다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넌 출근하면 낮에 집이 비어 있으니, 낮엔 우리 애들 공부방으로 사용하면 되겠다."
순간 마음에 이상한 촉(?), 느낌이 왔다. 이건 무슨 말이지? 대답을 하지 않고 다음 집을 향해서 이동했다. 타인에게 많이 휘둘려본 경험, 즉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보통 이런 '선 넘는 사람'은 어떤 시작점이 있다. 그리고 이런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농담처럼 던지는 그 말은 진담이 되어 나타난다.
다행히도 친구가 사는 동네에는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행정 구역으로 집을 계약했다. 친구는 많이 서운해했지만, 나는 내가 그 해 한일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다.
전문직인 친구의 남편은 주 6일 근무하고, 퇴근이 늦었다. 그래서 친구는 남편과 함께할 수 없는 순간에 나를 부르곤 했다. 가끔은 애들과 본인,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네 차로 애들 데리고 어디로 놀러 가자고 하거나, 동네 맘들 모임 초대... 물론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한 번도 응하지 않았으며^^;; 올해는 코로나라는 팬데믹으로 가끔씩 만나던 커피타임도 종종 거절하는 철벽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가을에는 심심해하는 친구에게 브런치 작가 제안을 했다. 친구의 대답은?
"난 글 쓰는 거 관심 없어. 너 글 잘 쓰면 나중에 우리 애들 자기소개서 써주면 되겠다~"라며 좋아했다.
난 친구가 필요했는데, 그 친구는 보모나 시녀가 필요한 것 같았다. 이후에도 몇 번 연락이 왔지만 코로나를 핑계 대며 만남을 거부하는 철벽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수준의 멘트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친구는 단단히 삐졌다.

아마도 친구의 모든 기대와 달랐던 것 같다. 공감하길 좋아하고, 잘 받아주던 과거의 모습과 낯선 도시에 싱글녀라는 조건은 여러모로 만만(?)하게 느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이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과거 감정 database에는 '선을 넘는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이 남아 있다. 이런 사람들은 Signal이 있다. 보통 이런 신호는 '직감'이라고 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직감을 무시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는 생각으로 그 이상한 느낌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느낌, 직감은 AI보다 정확하고 빠른 성능을 자랑한다.
직감이 온 순간부터 경계하고,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런 영역 침입자들은 처음엔 가볍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중엔 '네 것도 내 것,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라는 논리로 타인의 공간과 시간 침입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침입자가 원주민을 몰아내는 막장 드라마가 전개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용감한 행위는
용감하지 않으면서도 용기와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 코라 해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