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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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자 베티 하트와 토드 리슬리는 1995년 논문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아이들 간에 '언어 능력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낸 적도 있다.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하며 자란 아이들일수록 풍부한 어휘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언어적 격차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격차도 상당하다.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하며 자란 아이들일수록 풍부한 어휘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언어적 격차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격차도 상당하다. 사회학자 그레그 덩컨과 리처드 머네인의 연구에 따르면 자녀의 경험을 위해 부모가 지출하는 비용은 상위 20퍼센트 가구가 하위 20퍼센트 가구보다 열 배 많다고 한다. 어떤 아이가 TV로만 비행기를 접할 때,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여권을 만든다.
난 첫째로 태어났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나의 언어 발달 속도는 우리 남매 중에 꼴찌라고 했다. 동생들은 밑으로 갈수록 옹알이도, 문장으로 말하는 시기와 속도까지 비교 불가 일만큼 빨랐다. 집 안에 대화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언어 습득과 속도가 비례함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아이를 직접 키워보지 못한 미혼이지만 그래서 더 낯설게,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건 아이들이 말하는 내용, 콘텐츠다.
아이는 아이의 목소리로 어른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어른의 흔적을 발견한다.
예전에 선배 가족이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손님 방문 전, 평소보다 집안을 열심히 청소하고, 꽃꽂이 화병도 몇 개를 만들어서 비치해두었다. 놀러 온 5살 아이는 꽃꽂이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꽃은 안 예쁜데, 여기 꽃은 우리 집보다는 예쁘네."(더 심한 표현이었으나 정제하여 서술함 ㅠㅠ)
5살 아이의 말이었지만 아이의 엄마도 기분이 나쁘고, 상대적 우위였던 집주인인 나의 마음도 불편했다. 거기다 평소 화를 잘 내는 아이의 엄마인 선배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해졌다...
아이의 목소리로 아이의 엄마를 느끼게 되었다. 너무 오래 가까이에 있어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선배는 '좋다, 싫다'같은 표현보다는 '누구보다 누구는 훨씬 못한다', '누구보다는 누가 좀 낫다'라는 표현 등으로 비교와 폄하를 하는 어휘와 문장을 자주 사용했었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힘이 빠지던 내 모습이 보였다. 5살 아이의 목소리로 어른의 대화를 듣고 나니, 안보였던 현실이 투명하게 보였다.
조카가 놀러 와서 같이 소꿉놀이를 해보면, 동생 부부의 관심사를 알게 된다. 아이는 아빠, 엄마의 역할 놀이를 하면서 평소에 어른들이 하는 대화와 행동 방식을 따라 한다. 그렇게 아이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아이 엄마, 아빠를 만난다.
엄마, 아빠의 평상시 대화에 사용하는 어휘의 양이 아이의 어휘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단순히 어휘의 사용뿐 아니라 어른의 생각과 감정의 흔적이 아이에게 묻어난다. 정서적, 문화적 유산이 아이에게 투영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 같이 생활하는 어른을 보며 종이에 펜이 지나가듯, 많은 것을 따라 하고 흡수한다.
또래 기혼인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들의 육아, 교육, 학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미혼으로서 아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려고 노력은(?) 한다^^;;
엄마들의 대화에 육아법, 학군 이외에 '엄마의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 작가 김정운 선생님 동영상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엄마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이 불행한 게 아니라 본인이 불행하다"
미혼으로서 교육, 육아 뭐 하나 아는 것이 없다. 그저 간접 경험과 주변의 모습이 내가 아는 전부일뿐. 김정운 선생님 말씀에 동의하는 건, 교육을 말하는 또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 아이의 성적이나 학군을 언급할 뿐, 본인이 즐거워하는 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부동산 같은 재테크 제외하고)
그게 미혼이 보는 또래 기혼에 대한 감상, 아이에게서 보이는 어른의 모습이다. 아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보다 어른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아이의 말에서 어른의 일상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