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느티나무가

<책 속에 내 마음 두 스푼>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by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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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느티나무가 >

신경림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p.27

누구나 인생의 '세한도'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저 버틸 수밖에 없는 날들, 춥고 곤궁한 날들이 말이다. 그럴 때 나직이 자신에게 읊조려 보자. 지금 겪는 결핍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노라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온전해질 수는 있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 느꼈던 것이 지금은 다르게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시인이 바라본 느티나무의 키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상황을 내가 겪어보니 아는 것과 그 나이가 돼서 아는 것들이 있다^^;;


내 일, 나의 문제가 되기 전까지, 어떤 충격이 오기 전까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내 일이 되고, 내가 많이 아파보고, 고민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진진의 전쟁 같은, 피곤한 일상, 그리고 그로 인한 깨달음은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으로는 특히, 반대편의 입장을 가진 사람(가정이 화목하고, 부유하게 성장한 사촌의 시선)의 눈에는 평생을 살아내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아픈 만큼 성숙할 수 있다(?)'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아프다고 모두 성숙하는 건 아니니깐. 아픔이라는 상처에 새 살이 돋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상처가 덧나서 더 고통받고, 아물지 않은 상태로 살아갈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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