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회피 성향의 나는...
20살부터 지금까지 나를 보자면 나는 적극적 회피 성향이다. 문제에 정면 돌파하기보다는 되도록 우회했고, 누군가의 말의 거절이나 단호함 대신 애매한 미소와 승낙이 많았다.
그렇게 꼬이고 꼬인 30대가 시작됐다. 드라마에선 캔디 같은 주인공은 언제나 밝은 미소와 에너지를 가지고 문제를 정면 돌파한다. 친구들은 모두 영원한 우정과 의리를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멋진 남자 친구가 함께한다.
비슷한 환경의 나는... 적극적 회피 성향이었다. 그러다 어쩌다 문제나 일이 코 앞에 다가서면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현실 도피자 또는 현실회피자인 나의 스토리다. 내가 지금까지 한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들자면 첫째는 생계 자금이었다. 만약 엄마 집에서 살았다면 첫 회사의 재직 기간은 일 년 미만이었음을 자신한다. 그렇게 나는 생존과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
꼭 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소소한 문제부터 거대한 문제까지... 그렇게 회피해왔다. 언뜻 보면 모든 일을 앞장설 것도 같은데 정작 내 문제에는 소홀했다. 더 정확히는 회피했다. 일기 쓰는 걸 싫어했던 진짜 이유는 글을 못써서가 아니라 진짜 나를 대면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사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지금 집 문제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 저녁 부동산으로 향했다. 내일과 모레 일정으로 부동산을 둘러보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새로운 부동산에 한 군데 더 둘러보았고, 두 군데 부동산에는 간곡하게 부탁드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리 집보다 훨씬 인기 많은 단지에 더 큰 집이 같은 시세였다. 그럼에도 빈 집이라고 했다. 월세가 내리고 있었는데 반대로 내가 사는 집은 월세를 올려버린... 한 명도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을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달을 빼면 정확히 10개월이 남았다. 장기전이 될까 봐... 더 갑갑해졌다. 난 하나에 빠지면 다른 하나를 못하는 멀티플레이가 어려운 사람이다. 집에 관련된 답답한 심정이 다른 상황, 다른 장소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그만큼 쿨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면이 부족하다.
멀티 페르소나라는 단어까지 못하더라도 넘치는 감정과 에너지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성인이 된 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하튼 집주인은 본인이 필요할 때 빼고는 전화도 문자도 응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달라진 시세를 문자로 알려 드렸다. 이 불합리함을. 적극적 방해와 소극적 방해를 '계약의 해제'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법적으로는 약자이니 나는 오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 회피 주의자인 나는 시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에 다시 행동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부동산에 물건을 올렸다고 토라진 부동산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집 보러 오는 사람은 없고 시간은 다 됐고, 집주인은 저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남김없이 해보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극적 회피 주의자가 현실주의자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난 절박할 때만 움직였다. 늦어도 아주 늦었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위험할 때만. 적극적 회피주의자의 사회화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