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강약약강의 세계

by 그럼에도

저녁을 먹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에 A라는 사람이 나이가 아래인 사람들과 일할 때, '시키면 해라~'식의 '라테는 말이야'로 말한다는 것이다. 거칠고 큰 목소리로,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서 일을 시킨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갑질'이었다. 이야기를 전해주던 지인은 이어서 말했다.


" 집이 부자인 사람들은 '아니다' 싶으면 거절도 잘하고, 안 따라오던데... 집이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그런 강압적인 분위기에 순종하는 경향이 있어."


한 마디로 '빌런의 갑질을 잘 받아주는 흑수저'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그 말에 흑수저 대표인 나는 한 마디로 쏘아붙였다.


" 그 말을 하는 너도 부자가 아닌데, 나중에 네 아이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라는 말에 지인은 바로 정색했다. 그냥 한 말인데, 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고.


본인과 본인 가족은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는데, 타인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보다 아래이며, 만만하다고 하는 사람을 딱 정해놓고 괴롭힌다. 갑질 D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D는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하고 배려심이 넘쳤으며, 웃음 띤 미소로 화답했으니까.


대신 본인이 지정한 갑질의 타깃에게만 차갑고 잔혹했다. 그렇게 이미지 관리와 스트레스 해소를 동시에 진행했던 갑질 D가 떠올랐다.



흑수저와 금수저의 사회생활은 시작점부터 너무나 달랐다. 같은 회사인데도, 달리는 운동장이 다른 세계였다.


집 주소가 강남이고 재력을 과시하던 A의 사회생활은 달랐다. A에게는 처음부터 갑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막내라는 이름의 배려가 여기저기에 존재했다. 본인은 그마저도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옆에서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신입사원이라고 해도, 그는 잘 가꿔진 트랙에 선수 복장을 하고 달리는 사람이라면, 정반대인 흑수저인 사람 B는 시골 흙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처럼 뭐든 울퉁불통했다. 더 거칠게 대했고, 더 많은 잡무를 시켰다.


그런 흑수저 B를 안따까워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만만한 좋은 목표물로 여기는 갑질러 들도 많았다.


살아오는 동안 A는 직선을 달렸다면 B는 곡선을 달렸다. 물론 그렇게 단단해졌을 수도 있지만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성적이고 흑수 저라는 이유만으로 갑질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세상과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B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본인의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잘 해내야 한다', '버텨야 한다'는 절박함을 반쯤 비워내고' 될 데로 돼라'는 무모함을 짬짜면처럼 반반으로 채워야 한다. 부당한 대우에 '어렵다, 할 수 없다'라는 소심한 대답부터 더 당당한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


갑질러들은 공통적으로 '강약약강'이다. 아무리 약자라고 해도 갑자기 강하고 나올 때, 움찔하는 그 순간에 '거절'의 멘트를 날리고, 차갑게 돌아서는 장면도 일상에 몇 번은 올라와야 한다.


갑질러의 어떤 상황에도 공감하거나 동요하지 않을 때, 반전이 시작된다. 그렇게 이성적인 풍경은 가슴에 '될 대로 돼라'라는 무모함이 반쯤 담겨있을 때, 비로소 펼쳐지는 장면이다.


'갑질 이야기'에 일부 공감이 가기고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너무나 무심코, 우리는 피해자가 '피해를 당할 만한 사람'이라고, 피해자의 잘못으로 규정짓는 비정상적인 문화 안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어제 지나가던 그 이야기가 오늘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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