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적당한 사이

by 그럼에도

뉴스를 보니 우방국이라고 믿었던 미국이 여러 나라를 도감청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응은 화는커녕, 우방으로서...이라고 그냥 넘어가고 있었다.


화낼 때, 화를 내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기면 어떻게 될까?


화를 내는 타이밍은 국가와 국가 말고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중요하다. 공격을 해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슬쩍 선을 넘었다가 곧 대놓고 남의 영역에 들어와서 본인이 주인 행세를 시작한다.


몇 달 전 일도 그랬다. 그건 이불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독설가 녀석은 나에 대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폭언을 했다. 그것도 오랜만에 소모임으로 만난 사이에서. 너무나 당황스러웠는데, 화를 내야 했는데,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색한 순간이 지나서, 곧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이야기 당사자의 폭언은 처음이 아니다. 분명 따로 연락할 때는 다정하게 말을 하지만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폭언을 하는 A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이렇게 해도 공격하지 않는 만만한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행위로 어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것일까?


A 앞에서 나는 몇 년 전에도, 이번에도 제대로 화를 내지 못했고, 막아서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달랐다. 이불 킥 대신 마음을 되돌아보고 있다.


바둑 게임을 지고 난 후에 복기하는 선수처럼. 그때 화를 내야 하는 순간, 바로 대화에 '일시정지'버튼을 누르고, 독설에 맞섰서야 했다. 무례한 사람의 영역 침범을 제대로 지적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왜 A 앞에서 나는 작아지는 걸까? 그것도 지금까지.


A는 흔히 말하는 핵인싸이다. 한때 A와 친해지려 했었고, A가 속한 모임 여기저기에 함께한 적도 있었다. 늘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만남의 끈은 쭉 이어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친해지고 싶은 좋은 사람이 '인싸,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책을 읽다 우연히 깨닫는 기회가 있었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능력과 외향성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대한 오랜 열망이 있었음을 배웠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적이고, 사람을 도구로 보는 그런 사람들. 옆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참고 넘기는 나와 같은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얼마 전, 집주인 심부름으로 움직였던 부동산소장에게 강하게 화를 낸 것처럼, 공격에는 방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분노하지 않으면, 평생 '이불킥을 넘어선 답답한 고구마 인생'의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A가 있는 모임에 더는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했다. 만나기 전부터 공격과 방어를 준비하고 나가야 할 만큼 피곤한 사이라면, 더는 인연을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집 안을 리모델링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무리 할인을 해도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나 인테리어 소품을 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최상의 인테리어였음을 깨달았으니까.

평온함을 위하여

아무리 화려한 인맥의 모임이라도,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사이라면 마음을 더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영역을 침범하는 사이는 공격과 수비로 무장을 해도, 결국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가는 것이니까.


사회생활은 어쩔 수 없지만 사적 만남은 기본 인성을 갖춘 사람만으로 한정하려고 한다. 최소한으로, 나의 그릇만큼만.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 더는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마음을 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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