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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Sep 13. 2023

돈 많고, 시간 많고,  건강한 악당

 "쌤통이다.. 세입자한테는 미안한 소리지만 집 안 나가서 고생 쫌 해봐라~"


 작년 10월 집주인이 다된 계약을 깼을 때, 중간에서 마음 고생한 부동산 소장님이셨다. 올해 집문제로 전화를 드렸다가 들은 이야기였다. 소장님의 말씀은 몇 달 후, 현실이 되었다.



 작년 10월이었다. 계약 기간이 남아서 다음 세입자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집주인이 이틀간 연락두절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서는 계약조건을 변경했다. 그렇게 나와 부동산소장을 애먹이고, 울먹이게 만든 할머니였다.


 부동산 소장이 가슴 깊이 화가 난 이유는 집주인의 두 번째 만행에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 오기 전, 집주인은 집을 내놓았고 곧 임자가 나타났다. 그때에도 집주인은 이틀간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부동산 소장님을 애태웠다고 한다. 그렇게 사겠다는 임자는 사라졌다.


 그때도 집주인은 이틀 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절에 불공이 들이고 오느라고 전화 온 줄 몰랐다면서, 웃으면서 호박죽을 주고 갔다고 한다. '병 주고, 약 주고' 했던  집주인을 용서한 건 소장님이었다. 또한 불공이 아니라 원래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는지 부동산 투어를 하느라 바빴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참았다고 했다.


 집주인은 집 말고도 상가도 있어서,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갑'이라고 했다. 그렇게 흘려보낸 과거가 다시 현실이 되었던 2022년 10월 25일은 나도, 부동산 소장님 마음도 뜨거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산집과 계약 기간이 만료가 이번 달로 끝난다. 빨리 이 악연을 끊고 싶었다. 6월부터 문자로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계약도 끝난다고 알렸다. 작년 가을 이후로 나의 연락에는 문자도 전화도 답이 없는 '연락두절' 집주인이었다.


 물론 얼마 전 부동산 성화로 한 번 전화를 받았다. 부동산에 부탁한 이유는 집주인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을까 봐였다. 동네 부동산에서도 집주인 물건은 일부로 안 받는 집이 있을 만큼 집주인은 유명했다. 혹시나 핸드폰 번호를 바꾼 건지, 아니면 평소처럼 잠수를 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퇴근길, 집주인이 웬 일로 전화가 왔다. 두 통의 전화가 와있었고,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반말을 넘어서 막말을 하던 칠십 대 집주인이 웃으면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보증금 못 돌려받을까 봐 걱정되죠? 나도 요새 집문제로 잠이 안 와요. 여기 단지에 16집이 나왔대요. 정말 내가 잠을 못 자요. 내가 바빠서 그동안 문자에도 답을 못했어요.'라는 말을 정확히 십 분간 무한반복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하는지 들어주다가, 중간에 한 마디를 던졌다.


 "작년에 다음 세입자 구해놨더니 쫓아내셨잖아요."


 집주인인 대꾸도 하지 않고, '내가 요새 잠을 못 자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노력하고 집도 열 군데나 내놨다'라고 했다. 역시나 거짓말이었다.


 열 군데 내놓은 사람도 나였고, 인터넷에 매물이 올라가도록 한 사람도 나였다. 물론 집주인도 올해는 부동산 몇 군데에 더 내놓은 것 같았다. 다음 세입자를 쫓아내고, 더 비싼 값을 불렀다가, 보러 오는 사람이 없자 바뀐 행동이었다.


 할머니의 십 분간의 랩을 듣고 난 후 '계약 기간이 지나면 보증금 송금해 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계약 기간 중에 함부로 집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에 집주인의 막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길고 긴 막말 끝에는 '다시는 먼저 문자나 전화하지 말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막말에 바로 문자를 보냈다.


 "임대인 송 OO 님과의 계약은 2023년 9월 30일 만료됩니다. 계좌번호 OOO으로 OOO금액을 보내주세요."라며.


 막말에는 극존칭과 문어체로 답해 드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나눈 집주인과의 연락은 끊겼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처럼 복수할 생각도, 소송까지 갈 마음 역시 남아 있지 않았다. 동네 현금 부자라고 소문난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송금하기를, 악연이 하루빨리 끝나길 기도할 뿐이다. 그럼에도 기도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법적 절차를 실행하겠지만...


 아무리 절에서 불공을 들여도, 그분의 악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산집 CCTV도 옆단지 부동산 소장님이 집주인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설치하라고 하셨다. 워낙 질이 안 좋은 사람이니, 정말 조심하라는 말씀과 함께 커피를 따라주셨다.


 이 동네, 옆 동네 부동산에서도 집주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나까지 한 명 더 추가됐다고 그분의 일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는 '돈 많고, 시간 많고, 건강한 노인'이라는 엄청난 행운을 가진 한 사람이, 스쿠루지처럼 동네 밉상으로 사는 모습을 일 년간 바라보았다.


 모두가 바라는 조건을 가지고도 저렇게 피곤하게 살 수도 있었다.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구나!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배우고 싶은 사람,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 할 사람, 그냥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힘든 시기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채워 넣을까? 미움이 너무 깊어지기 전에 악연을 빨리 정리하고 싶다.


 돈 많고, 시간 많고, 건강한 스쿠루지여~계절이 떠나듯, 계약도 정리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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