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돌고 돌아서 만난다

뜻밖의 고백

by 그럼에도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한 친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사실은 나, 너 오래전부터 미워했었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 번도 다툰 적 없고, 가장 오랜 기간 만나고 연락한 친구에게 들은 가장 의외의 말이었다.

sticker sticker

그런데 지금은 괜찮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일의 시작은 신입 사원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 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전화만 하면 매일 서로 힘들다며 징징거리고, 어떤 날은 울기도 하던 그런 시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난 회사 내의 사람에 치여서 힘들고, 그 친구는 과도한 일에 치여서 더 힘들다는 게 달랐다.


친구는 업계의 특성상 시즌이라고 하는 성수기가 되면 주 7일 근무에 야근 수당도 없이 야근에 시달리는 삶을 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친구인 나는 늘 회사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가끔씩은 문화센터라는 곳에 가서 이것저것 배운다는 얘기를 했다고. 본인은 숨 쉴 여유도 공간도 없이 사는데 본인과 반대의 일상을 보내는 내가 미웠다고.


늘 누군가에게 상처 받았다고 하면서 정작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고백은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고 나온 건 아니었다. 달라진 현실에서 나온 마음과 삶의 여유가 더 컸을 것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시간을 다시 거슬러보니, 친구는 졸업 후 주 7일 근무하던 회사를 다녔고, 1년 후엔 미련 없이 퇴사했다. 그리고 주 5일 근무를 지키는 회사를 옮기고, 주말엔 손재주 많은 특기를 살려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손재주와 시간은 수강생을 전문가로 변신시켰고, 이제는 주말에 강의를 하는 어엿한 강사가 되었다.


지금은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여 커리어도 올리고, 더하여 사랑까지 얻은 멋진 친구, 부러운 친구가 되어 있다. 삶의 여유는 친구의 어조와 대화하는 단어에도 묻어 나왔다.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던 높은 어조는 부드러워지고, 대화의 단어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시간은 돌고 돌아서 부러워하던 모습의 친구는 내 앞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처럼 앞 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때 나는 '사회생활=위계질서'라는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급급했다. 객관적으로 더 힘든 사람을 앞에 두고 했던 나의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면서 소소한 변화를 꼬치꼬치 묻거나 말하지 않는 건 어쩌면 배려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서로가 못 가진 것을 더 갖고 싶고, 더 부러워한다.


또래 전업주부인 친구는시간과 돈 모두 오롯이 투자를 할 수 있는 싱글인 나를 부러워했다. 반대로 유부친구는 육아의 고통으로 시작해서 남편의 깜짝 이벤트와 가족 여행 자랑으로 마무리하는 푸념인 듯 자랑인 듯한 이야기에 나는 부러움과 초라함을 동시에 느꼈으니깐.


시간이 돌고 또 돌아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전보다는 담대하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뇌가 세상을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