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념, 체념
비워낼 수 있을까?
이사한 곳이 더 넓어져도 나의 공간은 더 넓어지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한 나의 옷과 책과 그 외에 정리하지 못한 나의 소소하지만 자잘한 언젠가 쓸모 있을지도 모를 녀석들까지...
옷장 속 상태가 그냥 그런 옷은 수거함으로 보내고, 안 입는 옷 중 팔릴만한 녀석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기 위해 모아두었다.
안 입는데, 애착만 많아서,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옷장 속 터줏대감 같은 녀석들 일부도 이번엔 꺼내 보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입을 거라는 확신의 아이템들. 그렇지만 입어본 적 없는 녀석들!
물건뿐만 아니라 관계에서도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미니멀리즘이 요새 나의 마음에 가득 차 있다.
물건 정리도 어려웠지만 사람에 대한 애착은 너무나 정리하기 어려웠다. 물건은 싫어도 이사 때마다 시기적으로 또 의무적으로 정리를 해야만 했다. 인간관계는 옷장 속 터줏대감 아이템처럼 내 옆을 떠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리의 순간을 넘겨서 결국은 관계에도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은 단념으로 돌아왔다.
‘내가 달라지면 지금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최근 몇 달 더 많이 대화했다. 조용한 공간을 대화로 채웠고, 그리고 나의 위치는 물 빠진 저수지처럼 명확하게 드러났다. 나의 자리는 없었다.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는 멤버에서 이젠 다른 모습의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생각하는 내가 더 또렷이 보였다.
이별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별이 다가왔다는 걸 스르륵 느꼈다. 누군가와 충돌하지 않았지만 내가 비켜줘야 할 때임을. 낙엽 떨어지듯 헤어질 때가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이별의 계절, 가을.
————————————————————————————————————————————————————————-
그림
https://www.pinterest.co.kr/pin/579345939551485566/visual-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