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p.227
나는 이모를 많이 닮았지만 그러나 이모의 딸은 아니었다. 내가 이모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주리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중략
그렇다면 주리에게는 처음부터 절망 따윈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젓갈이나 장아찌로 비유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방법들을 주리는 애시당초 알지 못한 채 성장했다. 세상이 그 애를 단련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모와 이모부의 성실한 방어로 그런 기회들은 철저히 원천 봉쇄되었다.
삶의 부피는 중요하다. 그 부피를 더 단단히 쌓고 또 채우기 위해 그리고 지키기 위해 재테크 관련 모임과 영상, 책, 사람들의 대화 소재 등으로 마르지 않는 삶의 구성 요소이다. 하지만 높은 부피에 가려져 볼 수 없는 세상이 있다.
책의 주인공 안진진은 이종사촌 주리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고 있다. 쌍둥이로 태어난 엄마와 이모는 결혼 후 전혀 다른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요새 말하는 '흑수저'의 삶을 사는 진진과 '금수저'의 삶을 사는 주리는 그렇게 정반대의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부유한 생활과 완벽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주리. 흔히 말하는 교과서적인 중산층의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주리는, 주리에게는 인생이란 정해진 틀과 틀에 부합하는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그런 고집스러움이 있었다. 정반대의 삶은 알고 싶지도 않은 '옳지 않은 길'이었다. 높은 성 위에서 바라보는 밖의 세상은 고층에서 바라본 장난감 모형처럼 작게만, 엉뚱하게만 바라보는 주리.
빈약한 인생, 작은 부피만 보였던 진진이었다.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작은 부피 속에 높은 밀도로 더 단단하게 채워져 있는 삶의 진실이 진진을 통해서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예전에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고 지인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전문직에 정말 공주님 같은 일상을 보내는 그분은 영화의 대사보다 공간의 대비 같은 미술적인 요소에 빠져 있었다. 반대로 나는 영화 속 대사와 표정에, 송강호가 느꼈을 그 모멸감에 몰입했던 것처럼. 재밌는 건 그분은 내게 어떻게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걸 먼저 생각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동상이몽.
p.296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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