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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열고 어둠을 몰아내는 작업, 글

김영하, '말하다'

by 그럼에도

p.57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던 시절에 이런 수업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했으니 자연스럽게 그 뒤에는 그때까지도 용서하기 어려웠던 사건이나 기억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 (중략)

커튼.gif


글쓰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과거를 생생하게 우리 앞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자기의 과거라는 어두운 지하실의 문을 열어젖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왜 필요할까요? 꼭 돌아봐야 할까요?


+


이렇게 써나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변화가 생기고 이렇게 축적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숨겨둔 트라우마나 어두운 감정은 숨어 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막상 커튼을 젖히면 의외로 별 볼일 없는 것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 언어화하는 동안 우리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것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언어는 논리의 산물이어서 제아무리 복잡한 심경도 언어 고유의 논리에 따라, 즉 말이 되도록 적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 더 강해지고 마음속의 어둠과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습니다.


+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나 오래 망설인 후였다. 가끔씩 바라만 보다가 내가 쓴다는 것에 신기했고, 그리고 점점 내가 단단해진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서 감사했다. 그리고 꽁꽁 싸매 둔 생각과 기억을 하나씩 풀어놓게 되는 마법이 생겨서 놀랐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잊고 싶었던 순간과 기억, 사람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쓰면서 마음의 정리정돈이 이루어지고 있다. 쓴다고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 일에 내가 좀 더 의연해질 뿐.


글쓰기의 장점은 브런치에 참 자주 실리는 글감이다. 그리고 마르지 않는 시냇물처럼 계속 이렇게 쓰일 소재이다.


글을 쓰다 보니, 쓰고 나서 이렇게 바뀌고 있다고.











그림 https://www.pinterest.co.kr/pin/22729173103967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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