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쓰는 일

고통을 기록함으로써 ,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

by 랭보

고통(苦痛)을 통해 인간의 삶은 성숙해지는 것일까. 삶의 어떤 결정적 순간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이고,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단순히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기 보단,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가늠해낼 수 있다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인생의 방향성,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진면목 같은 것 말이다. 고통이 분명 한 인간의 중요한 핵심(core)을 형성해낸다는 것에는 일면 동의 할 수있다. 수많은 위인전에서, 많은 이들의 성공신화에서 우리는 그들의 성숙함, 탁월함, 훌륭함이 그들이 느꼈을 행복과 즐거움, 성취감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걸 봐왔다. 그보다는 처절한 실패, 뼈를 깎는 고통 같은 것들이 오늘날 그들을 만든 원동력의 팔 할 이었다.


"이래저래 고통을 겪었지만, 저는 그것을 이러저러하게 극복하였고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이런 고통을 겪는다해도 다시 이겨낼 자신있어요." 나도 아마 서른이 채 되기 무렵까지는 나의 고통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저렇게 용기 있게 대답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마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을 느끼며 살아왔었나보다. 정말 감사하게도. 알게 모르게 또래보다 고통에 대해 둔감해진 탓도 있었다. 간접 경험을 통해서였다. 어린 나의 눈에 어른들의 삶, 특히 나의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내 부모가 살아가는 세상은 잔혹한 '전쟁터'였다.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전장에 뛰어든 부모의 등 뒤에 숨어 전장을 그렇게 체험했던 탓에 나는 섣부르게도 고통에 익숙하다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다.


출판사 외판원으로 시작해 젊은 시절 나름의 일찍 조직생활에서 인정을 받고, 사업을 시작한 우리 아버지. 동네 서점을 개업했다 실패하고, 그 이후 여러 번 사업을 시작하고 망하길 반복했던 내 아버지. IMF를 기점으로 우리 집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한창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들어갈 즈음에 집에서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생활을 이어갈 수 없던 우리 엄마는 막내 남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그 무렵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엄마는 내가 알기로 주변에서 그 어떤 여자보다 일을 많이하고, 여러가지 일을 해본 사람이다. 어린시절, 난 이런 종류의 현실들이 고통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여전히 부모의 케어를 받고 싶은 아이인데 나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어설픈 엄마노릇을 해야했던 상황들. 실은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내 스스로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만 느꼈던 순간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미성년이기 때문에 어떤 의지나 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어려움. 이런 것들은 시간이 좀 지나고, 어른이 되면 해결되리란 희망이 있는 고통이었다. 실제로 나는 학교를 졸업해서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스스로 어느정도 경제적인 독립이 되어가면서 이런 종류의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이십대의 어느 시점엔, 내가 청소년기에 느꼈던 그런 현실적 고통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내심 기뻐했던 것 같다. 이젠 좀 지긋지긋하니 내 인생에서 제발 꺼져주길 바랐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려고 했다. 열심히 했고, 나름 운도 따랐고, 아마 누군가는 내가 성취한 것들을 부러워 했을 수 있다. 집에선 더 이상 '네가 아니면 안돼. 제발 견뎌줘.'같은 부모의 애절한 눈빛과 마주치는 일이 덜해졌다. 사실 내가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다. 부모와 나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 해야하는 상황이 싫었던 것 같다. 누구의 딸, 언니, 누나가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이따금 위로를 바라는 투정과 자기연민에 빠진 엄마의 모습에 과도하게 화를 냈다. 그녀가 겪었을 고통, 현재진행형 어쩌면 미래진행형이 될 지도 모르는 삶의 무게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래도 그냥 지금 껏 버텨왔던 대로 조용히 스스로 살아낼 수 밖에 없는 인생을 받아들이길 바랐다. 내가 부모라면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어릴 적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 '안네의 일기'를 떠올린다. 나치 치하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의 잔혹한 실상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영화, 책,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해왔다. 생명이 스러저가는 그런 시대에 매일 자신이 느끼는 세상의 모습들을 쓴 어린소녀 안네 프랑크를 보면서 '고통을 쓰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짐작해봤다. 한 인간의 가슴과 머리를 통해 손으로 배출되는 글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니. 참 멋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감동은 때론 지독하고 처절한 경험을 전제로 하니, 어쩌면 평생 그런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복은 복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게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와 비슷한 고통이 왔음에도 거의 사년 째 그 고통에 대해 한 자도 써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안네프랑크가 세상에서 1명이고, 왜 여전히 우리가 '안네의 일기'를 필독도서로 읽는지 알만한 일이다. 고통을 겪는 이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을 써내려가는 일은 어렵다. 매일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음에도 불구하고 몇년 째 펜이 쥐어지지가 않는다. 안네도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책을 출판해 인세를 받기 위해 일기를 쓰진 않았을 것다. 아마도 '쓰는 것'을 통해 치유받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스스로의 고통을 쓰고 읽는 행위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통의 해소 또는 성숙이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인가. '고통을 쓰는 일'은 용기다. 어른이 되면 용기내는 일에 더 겁을 먹게 된다.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열세살 소녀 안네가 일기장에 썼던 그 말처럼 나도 종이를 믿고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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