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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Jul 09. 2018

세상이 내 것 같았던 시절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England is Mine)' 속 청춘

친구들은 줄곧 내게 이렇게 말했다.

"꿈이 있어서 좋겠다. 난 하고 싶은게 뭔지 몰라서 그게 더 불행한 것 같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거야"

그렇지만 세상에 꿈이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10대, 천하에 인간으로 태어나 되고 싶은 게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20대의 나는, 지금 그냥 어쩌다보니 '회사원'이 되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 꿈이 있건 없건 사연없는 청춘은 없을 것이다. 당신도, 나도 하나씩 뜯어보면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을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솔직히 좀 억울하다. 못된 심보다. 내 등따숩고 배부른 것도 좋긴 한데, 그래도 조금 배를 곯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고개가 수그러든다. 게다 배도 두둑하게 부르면서 꿈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심통이 난다. 제 손에 든 빵은 놓지 못하고,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쇼윈도에 잘 진열된 남의 정성들여 만든 케이크를 바라보면서 투덜투덜 거리는 것 만큼 모양 빠지는 일은 없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England is mine)'은 영국밴드 더 스미스의 리드 보컬인 '모리세이'를 실제모델로 삼아서 만들어진 영화다. 누군가의 성취에 심술이 날 때, 그에게 오늘의 영광이 있기 까지 얼마나 지독한 어둠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오스카 와일드를 좋아하는 문학청년 스티븐은 음악을 하고 싶어하며 밴드를 꾸리려 한다.  하지만 다소 소극적인 성격탓에 쉽게 자신과 어울리는 밴드 맴버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다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세무사무소에 취직하게 되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채 살아가게 되면서 겪는 갈등과 좌절 등을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 어쩌면 직업이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에 그친다. 또는 주변사람들로 부터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하는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해 겨우 구한 '방패'에 지나지 않는다. 스티븐이 퇴근 후에도 계속해서 타이핑을 하면서 글을 쓰는 장면이나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끼우고 음악을 듣는 모습에서 충분히 그 열정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침대와 책상이 들어찬 작은 공간의 그의 방에서 그는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의 주요장면은 그의 작고 어두운 방에서 이뤄진다. 그 방이 그의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제목이 암시하듯, 이 무명의 천재는 '영국이 내것이다'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된다고 우린 알고 있다. 이 영화 상에선 성공한 모리세이의 모습이 나타나진 않고, 그의 어두운 시절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비교적 내게 친근한 라디오헤드나 오아시스와 같은 엄청난 밴드들의 뮤지션이라고 하니 조금이나마 가늠이 되긴 했다.


결국 메시지는 두 개로 압축된다. 하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는 것 만큼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단 거다. 당신이 정말 간절한 꿈이 있다면, 지치지 말아야 한다. 주변에 휘둘려서도 안된다. 어떨 땐 눈 감고 귀 막고 그냥 앞만보고 가야한다. 남의 인정따위를 바라지도 말고, 그냥 내가 즐겁고 나를 위해서 이 세상이 내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장착해야 한다. 그렇다고 쉬지않고 달릴 필요도 없다. 아예 멈춰서지만 않는다면 느릿느릿 엉금엉금 가도 좋을 것 같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를 지탱하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 인생에서 아무리 바닥을 치더라도, 내가 저 밑바닥까지 내려앉아도 내 곁에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곧 올라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스티븐의 곁에는 그의 '엄마'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도 내 엄마가 떠올랐다. 한 없이 바닥을 치고있는 순간에도 그래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은 기저에 항상 '엄마'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모든 이가 마지막으로 내 손을 잡아줄 존재를 쉽게 떠올리진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진 채로 상영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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