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으려고 사는 거지 소유하려고 사는 게 아닌데
소유의 의미만 가진 책들을 골라내기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책장 정리를 시작했다. 첫 번째 책장 정리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였다. 수험생활 때 쌓아둔 문제집과 교과서를 버렸다.(사실 태우고 싶었다.)그러고 나서 20여 년이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좁디좁은 공간에 책을 쌓아왔다. 몇 권이나 소장했는지 알 턱이 없지만 거실 한편을 가득 채운 책꽂이, 방 책상에 따로 놓여있는 책장, 상자에 들어있는데 공간이 없어서 아주 오랫동안 '누워 있는' 책들을 세면 족히 1,000권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철 지난 취업서, 수험서 등도 포함이긴 하다.
시험과 관련된 학습서 모조리 버리기
우선 영어시험과 관련된 책들은 유통기한(?)이 있으므로 모조리 갖다 버렸다. 토익, 토플, GMAT, TEPS, 영문 문법서(Grammar in Use) 등등. 이렇게 많은 영어시험 책이 있는데도 내 영어실력은 별반 좋아진 것 같진 않다. 탈한국을 외치면서 유학 준비도 했었는데 모든 것이 불발되고 말았다. 어차피 다시 나간다고 해도 새로 사야 하는 것들이라 과감하게 폐휴지함으로 직행. 취업과 관련된 각종 인적성 문제지를 비롯한 시사상식책, 취업 관련서 및 신입사원 대상 교육 책자들도 갖다 버린다. 당분간 여행 갈 일도 없을 테고, 여행 간다고 책을 싸들고 가지 않으니 여행지 소개 책들도 모조리 버린다.
두번 읽지 않은 책들을 중고서점에 팔기
다음으로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을 골라낸다. 대부분의 책들은 당시에 너무 읽고 싶어서 구입한 것들이라 기본적으로 서평을 수첩이나 블로그에 기록해두었다. 이미 책 속의 좋은 구절 같은 건 추려놓은 상태다. 내 기준 '양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중고서점 '알라딘'용으로 구분한 뒤 판다. 손에 쥐는 현금도 꽤 쏠쏠해서 모아뒀다 맛있는 걸 사 먹어야겠다. 개중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책들도 있기 때문에, (저자의 싸인이나 메시지가 있는 책 또는 가까운 지인이 출간한 책 등) 이것들은 팔지 않고 따로 분리해둔다.
독립준비의 시작, 책을 팔기로 했다
언젠가 큰 내 소유의 집을 사게 되면, 책들을 키 맞추어 진열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민음사나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을 낱권으로 사두기도 했었다. 언젠가 세계문학전집 완전체를 갖는 날이 오지 않을까? 결혼할 때 배우자에게 혼수로 해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아마도 당분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책 정리를 시작한 이유는 사실 좀 간단하다. 우선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책장을 시공해서 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내년쯤엔 생애 첫 독립을 할 것 같아서이다. 아마 부모의 곁을 떠나 처음으로 하는 독립이라 내 독립공간은 지금 집의 3분의 1이 겨우 될 정도일 것이다. 내 몸하나 뉘일 공간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무언가를 버리면서 이렇게 신난 적이 있었던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