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은 배가 나왔다. 키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는데, 많이 나온 배 덕분에 유난히 바지가 후줄근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엉덩이가 번들번들한 정장. 연봉이 꽤 될텐데 왜 좋은 옷을 입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최고급 명품을 걸치고 있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내 눈이 저렴할지도 모르겠다.
대장은 술을 좋아했다. 매번 갑작스런 번개를 주선했다. 번번히 실패한다는게 문제였지만, 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러 가면 3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렸고 술버릇은 고약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형제애를 강조하곤 했다.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잔을 부딛히기를 여러번 하고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어깨동무는 항상 약간 아슬아슬하게 선을 왔다갔다 했다. 물론 악의가 없다는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다 같은건 아니니까.
대장의 유일한 낙은 자녀들이었다. 잘 커준 자식들이 그 인생의 낙이었다. 아들보단 딸이 예쁘다고 했지만 이야기할때 가만히 보면 아들에게 누구보다 큰 애정이 있었다. 부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지만 가끔 그녀에 대한 감사함 같은게 느껴지곤 했다. 그에겐 가족이라는 존재가 매우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두세시까지 술을 마시다 들어갔는지는 의문이지만)
한 조직의 대장이라는 자리가 그렇듯,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인자하고 자상하며 매사에 샤프하고 잘생기기까지 한 상사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실적에 목매었고 되도 않는 농담으로 언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희안한 타이밍을 만들었다. 밥을 사도 별로, 안사도 별로. 그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꽤 많은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심지어 향수를 뿌리고 온 날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개인적 취향마져 박살나는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그 앞에서는 언제나 방긋 웃는 직원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랬던 대장이, 더 이상 우리의 대장이 아니게 되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만큼은 '아니 대체 언제 그만두는거야' 라고 속삭이던 직원들도 숙연해졌다. 사실 직원들의 뒷담화도, 툴툴거림도 그저 푸념아닌 푸념이었을텐데 막상 타의에 의해 대장이 더 이상 대장이 아닌 그 날이 오자 모두는 마음이 무거웠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보통 좋았던 일들이 더 많이 기억나는 이상한 기억력의 오차로 인해 한동안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구관이 명관이다'는 말을 이럴때 쓰는 거구나, 를 느꼈다.
가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있나 궁금할 때 카톡 프로필을 훑곤 한다. 내 사람 목록의 중반쯤 내려가면 환하게 웃고있는 대장이 보인다. 프로필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 후줄근한 양복도 그대로 입고있다. 어쩌면, 아직, 이 조직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루아침에 '우리'가 '남'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조직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아직 대리 나부랭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장이 어디서든 대장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대장들에게 힘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