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즐기고 계시는 할머니
2020년 7월 31일 새벽부터 일어나 가뿐하게 배낭 하나를 메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혼자 집을 나서는 여행은 처음이라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에 약속시간보다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결혼 후 여행은 가족여행이 전부였습니다. 가족여행은 마냥 즐겁기보다는 가족들의 짐을 바리바리 쌓고 애들이 엄마를 찾을 때마다 항상 1순위로 보살폈습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와 함께 태국 여행을 갔을 때는 두 어머님이 좋아하실 만한 곳을 찾고,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잘 따라와 주길 바랐습니다. 마지막 날. 파인애플 밭을 구경하고 태국의 열대과일을 마음껏 먹어보는 코스였습니다. 어린 두 딸내미가 번 가라 가며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몇 개 먹지 못하고 한참을 화장실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시 식탁에 갔을 때는 이미 과일은 깨끗하게 치워진 뒤였습니다.
아직까지 말하고 있는 거 보면 대단히 마음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은 서운함과 나만 맛난 태국 과일을 먹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먹을 거 가지고 사소하게 뭐 그러냐 하지만, 작은 거라서 말하기 뭐하고 마음에서는 나가지 않고 뭐 그렇습니다.
지인과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부안읍에서 내렸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내소사에 있는 템플스테이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한 시간마다 출발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어서 근처 식당에서 짜글이(처음 들어본 메뉴명인데 두루치기와 비슷한 모습이었다)로 점심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손에 들고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1시간 정도 가야 하는데 이미 동네 지역 분들로 만원이었습니다. 우리의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보고 한 할머니가 옆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했습니다.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차가 출발하기 전 명랑한 분위기를 내뿜는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다른 할머니께서 자리를 맡아 놓았다며 손짓합니다. 그분은 고마워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에어컨은 나오지 않는지 창문은 모두 활짝 열어져 있었습니다. 동네 커피숍 인심이 좋은 건가? 점심을 과하게 먹었나? 반 이상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컵 표면에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명랑 할머니는 손주가 자주 커피를 사 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고 하십니다. 제 손에 든 커피를 보면서 나눠 먹자고 하기에 냉큼 건네어 드렸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먹던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곳이 아니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같았습니다.
나의 눈과 귀는 아이들과 가족을 벗어나 오로지 내가 있는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바깥 풍경에 열려있었습니다. 명랑 할머니는 버스 안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잠시도 쉼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어디에 가는지 물었습니다. 내소사에 있는 템플스테이에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보니 젤 네일아트를 하셨습니다. 일반 매니큐어가 아닌 반짝이가 있는 최신식 젤 네일아트였습니다.
“손톱 참 예쁘세요.”
나의 말에 할머니는 부끄러워하시며 다시 하러 가야 하는데 못 갔다고 주먹을 쥐듯이 손톱을 감추셨습니다. 할머니의 마스크는 일반 하얀색이 아닌 꽃무늬 마스크였습니다. 할머니는 80세가 되면 네일아트 못하니깐 지금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올해 78세라고 하시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많이 아팠어. 이상하게 몸이 가라앉고 모든 것이 귀찮고 그냥 다 싫더라고. 애들이 서울 큰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야. 두 번째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지. 세 번째 병원에 가니 우울증이라고 하더라고. 그때부터 약 먹고 하니깐 지금은 그래도 살만해. 한 번씩 답답하면 읍에 가서 맛난 밥도 사 먹고 네일아트도 하고 쇼핑도 하고 그래. 재미있잖아. 애들 키우고 손주도 키워주고 식당에서 일도 했지. 이제는 나이 들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이번에 내가 키워준 손주가 무슨 시험에 합격했대. 그거 엄청 어려운 거래. 나 보러 온다고 하더라고. 몇 년 만에 오는 거야. (저를 보시며) 엄마께 용돈도 드리고 연락도 자주 해. 우리 큰 딸은 넉넉하게 사는데도 용돈을 안 줘. 오히려 작은 딸이 용돈도 주고 전화도 자주 해. 용돈 꼭 드려. 나이 더 드시면 돈도 몰라. 시어머니가 90세 되니깐 돈도 모르시더라고.”
명랑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보는 제게 하셨습니다. 같이 맞장구치면서 간간이 제 이야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왜 자신의 마음이 아픈 것을 모르고 계셨을까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일을 그만두고 나서부터 아프신 거 같았습니다.
마음의 병은 자신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들에게 말해도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상처가 나고 피가 철철 나는 아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사건을 겪어야만 마음에 병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자식 키우고 손주까지 키우고 일만 하셨을 겁니다. 자신의 일이 없어지니 존재의 가치를 느끼지 못해 삶의 의미를 잃고 아프기 시작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냥 죽고만 싶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다 정말 일이 날 거 같아 자식들에게 말을 하셨다고. 지금은 약 먹고 있어서 많이 괜찮아졌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명랑하게 하셨을까요?
버스 안에서도 한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진 부채를 주고, 한 명뿐인 청년에게 말을 걸어 이야기를 하십니다. 다른 할머니에게 건강 안부를 묻고 조심히 가라고 끝까지 챙겨주십니다. 부채를 준 할아버지와 농담까지 주고받으시기에 아는 분인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40분 정도 가니 시내버스도 잠시 쉬었다 갑니다. 명량 할머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운전기사 분에게 건네주십니다.
유난히 밝고 명랑한 사람들을 만나 속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견뎌내나 싶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아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히려 더 밝고 재미나고 유쾌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명랑 할머니는 지금을 마음껏 즐기고 계십니다. 자신이 할 수 있고 아는 만큼 최대한 즐기십니다. 하고 싶은 네일아트도 더 나이 들면 못하니 지금 하십니다.
명랑 할머니를 보면서 친정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일이 없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라 힘들어하십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놀 수 있나 봅니다. 취미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DIY 명화 그리기를 사드렸습니다. 밑그림에 숫자가 적혀 있어 그 숫자에 맞춰 물감을 색칠하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완성된 그림을 벽에 걸어두었는데 정말 그럴듯했습니다. 엄마도 자신이 한 작품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엄마의 재능을 이제 발견했다며 한층 흥을 돋우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자신만의 취미가 있었으면 합니다. 삶의 기쁨이 자식이나 손주 말고, 일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다른 것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최정윤 배우가 ‘가장 보통의 가족’에서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딸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오랜만에 외출한 장면이었습니다. 배우 지인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자신은 소멸되어간다고.
소멸되어간다.
옛날 엄마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육아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 상황에서 마음의 아픔이 조금씩 커져가기도 합니다.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회나 문화가 만들어 놓은 것에 나를 맞추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순간.
마음의 상처는 드러나고 치유 방법을 찾게 됩니다.
명랑 할머니가 자신을 먼저 챙기고 알아가는 것을 배웠더라면 그리 아파했을까요? 할머니의 반짝반짝 손톱 위의 네일아트처럼 우리 모두에게 자신만의 반짝이는 보석 같은 삶이 있음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혼자만의 여행은 제 안의 반짝임을 더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