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란희 Oct 25. 2022

나는 자신에게 어떠한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가?

엄마 먼저 자기 신뢰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유일한 죄악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수엘렌 프리드     



실패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그래 실패해도 괜찮아, 어떻게 실패 안 하고 바로 성공하겠어. 말도 안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읽고 이해했고 머리에 남았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어떠한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마주한 순간 머리가 아닌 마음이 먼저 들고일어났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질문 중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나의 삶과 아이 삶의 균형점을 어느 선으로 할 것인가?”입니다. 


내 공부에 신경을 쓰다 보면 아이들이 방치되는 거 같고, 아이들을 챙겨주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줄다리기에 계속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두 가지 다 할 수는 없을까? 같이 하면 되는데 왜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일까? 어떤 답을 가져다 놓아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제 독서도 아이들의 공부도 계획에 미치지 못하고 마음 쓰임만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한없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나의 삶과 아이 삶의 균형점을 어느 선으로 할 것인가?” 이 질문 안에 숨겨진 진짜 마음이 있었습니다. 진짜 마음. 믿지 못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부터 시작임을 알기에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필사하지만 100%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왔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기에 실패를 두려워했습니다.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를 주저했고 망설이다 이내 침묵을 유지했습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 계속 확신에 찬 언어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의식 안에서만 자라던 자기 확신 덩어리는 마음속에서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무의식으로 쿵 하고 한층 내려갔습니다. 


진짜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계속 “틀려도 괜찮으니깐 네 생각을 표현해”라고 북을 치며 외치는 바람에 다른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서야 잠잠해졌습니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 말이 맞고 그렇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마음이 쓰였습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유독 참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유를 마시면서 흘리거나 물 컵을 쏟거나 하면 아이가 닦을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면 되는데 뾰쪽한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고는 했습니다. 행동으로는 이렇게 닦으면 되라고 알려주지만 마음은 ‘왜 이렇게 흘리는 거야?’라는 불평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덜 지적할 텐데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사사건건 잔소리로 이어졌습니다. 아이의 장점을 더 많이 보라는 말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내가 아이 양육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숨어 있었습니다. (과연 아이 양육에 성공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내가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실패하고 싶지 않아 아이가 실수를 할까 봐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것입니다. 아이와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듯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의식 안에 있던 양육방식과 무의식 안에 있던 양육방식이 일치하지 않아서 어렵고 힘들고 커다란 짐처럼 여겨진 것입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의식과 무의식이 통하도록 길 하나를 뚫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으로 아이를 믿고 실수해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기다려 주기로 합니다. 한 번은 아이가 6학년 때 카레를 데워서 먹는데 실수가 예상이 되었습니다. 냄비 바닥이 탈 염려가 있어서 중간중간 저어주어야 합니다. 잠깐 다른 일을 하느냐 아이에게 말해주는 것을 잊었습니다. 역시나 냄비 바닥이 검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냄비 바닥이 탄 이유를 알아차렸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어떠한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오랫동안 머리에 있던 생각들을 마음으로 들어가게 하는 열쇠 역할을 했습니다. 한없이 버려지는 에너지를 잠글 수 있게 했습니다. 


내 삶과 아이들 삶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당기는 줄다리를 끝내고 나란히 앉아 오늘을 살아가게 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아무리 베껴 써도 당장 변화되지 않음을 압니다. 머리에서 마음까지 가려면 채워짐의 양과 무게가 필요합니다. 


길이 열리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제 마음에서 손과 발로 가기까지 수많은 시도와 실패와 반복이 필요합니다.      




아이와 저는 줄다리기를 내려놓고 시소를 탑니다. 나의 삶과 아이의 삶은 고정된 균형점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저는 제 삶에 집중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면 그때는 아이와의 시간을 더 갖기도 합니다. 팽팽하게 하던 줄다리기를 놓고 시소에 올라탑니다. 제가 높이 올라갈 때도 있고 아이가 높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의 다리의 힘으로 놀던 시소는 어느 날 같이 땅에 다리가 닿습니다. 이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발을 구르며 시소를 탑니다. 


시소를 타듯이 아이와의 시간의 흐름을 탑니다.     

이전 09화 아줌마가 경영서는 왜 읽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