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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란희 Oct 26. 2022

새벽 시간은 나를 일으키는 힘

필사는 새벽에 해야 제맛!

미라클모닝을 기대하며 새벽 기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미라클모닝>이라는 책이 있는지도 모르고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삶의 변화가 필요한 순간 책을 만났고 필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필사를 하면서 기록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다이어리 열두 달 페이지에서 5월 18일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옆에 ‘새벽 5시 기상 시작’이라는 메모가 되어있습니다. 새벽 기상을 위해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낮에 약속이 있거나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전업주부가 집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른들이 볼 일이 생기면 저를 찾습니다. 다른 핑계를 댈 것도 없습니다. 다들 일하러 가고 낮에 시간이 있는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나의 하루이지만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루를 그렇게 살다 보면 계획했던 필사와 독서는 숙제처럼 겨우 하게 됩니다. 개학하기 이틀 전에 밀린 일기를 몰아서 쓰는 거처럼 해내기에 급급합니다. 


집중할 수 있는 매일 일정한 2시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새벽 기상이 목표가 아니라 매일 필사할 수 있는 시간 확보가 먼저였습니다.      




새벽 5시 기상은 내가 주도권을 갖는 시간입니다. 


계획한 필사와 일기 쓰기를 매일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아서 나만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새벽시간뿐입니다. 이 시간이 아니면 중요한 생각들은 놓치고 흘러가는 대로 그냥 살게 됩니다. 당장 눈앞에 널려 있는 일들을 뒤쫓아 다니며 수습하기에 바쁩니다. 자신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사람들의 말에, 세상의 소리에 휘둘리다 하루가 금세 지나갑니다.   



  

새벽 필사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필사를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새벽 시간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 것은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온전히 내 책임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계속 새벽 시간에 깨어 있고 싶었습니다. 


새벽에 벌떡 일어나는 방법을 검색했습니다. 대학생이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시계를 장롱 위에 올리고 잤다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알람을 끄기 위해 장롱 위에까지 손을 뻗어 가며 움직이는 사이에 잠이 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새벽에 일어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방법도 적용할 만했습니다. 


그날부터 스마트폰이 아닌 알람시계를 잠자리에서 가장 먼 곳에 두고 잤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자서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깨면 나만의 새벽시간은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은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새벽에 여지없이 알람 소리와 함께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새벽에 필사를 하고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에 올리면 이미 다른 사람이 그날 필사를 올렸습니다. 어두운 새벽에 애써 일어난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길 건너 다른 집에서도 눈 비비고 일어나 불을 켜고 책을 꺼내 독서대에 올려놓고 노트를 펼쳐 따라 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그분도 지금쯤 일어나서 필사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새벽잠을 깨우는 카페인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새벽 필사를 습관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은 큰 힘이 되고 지속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함께 가니 오히려 혼자 갈 때 보다 빠르고 멀리 가게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 거창한 일을 한 것이 아니지만, 새벽 기상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새벽 기상이 먼저가 아니고 새벽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이 먼저였습니다. 


매일 필사해서 한 권의 책 전체 필사하기. 100일 동안 나를 알기 위해 멘탈 트레이닝하기. 새벽 기상 덕분에 두 가지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필사를 하면서 정신은 깨우고, 정서는 채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를 채워가는 기쁨은 새벽에 계속 일어나게 했습니다. 하루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일이 필사라는 것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결심한 것을 실천한 적이 몇 번이나 있나요? 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책 한 권을 매일 필사해서 완료하고 싶었습니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이 경험은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새벽 기상을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자다가 엄마가 곁에 없어도 건넌방에서 필사를 하고 있을 거라고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면 귀신같이 알고 부릅니다.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아이 곁에 가서 토닥이며 안심하고 잘 수 있게 기다려줍니다. 처음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면 새벽에 아이들이 일어나거나 무섭다고 울어도 예상한 일이라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엄마의 새벽시간을 지키면 아이는 어느새 적응하고 새벽에 아무리 알림이 울려도 아침까지 잡니다. 요즘은 새벽에 불빛이 들어와서 잠자는데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그런 줄도 모른다고 합니다. 


엄마 먼저 기준을 잡고 가면 아이들은 따라옵니다.      




새벽시간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 덕분에 저를 돌보며 살아갑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묻습니다. 고요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 노릇을 합니다. 찬찬히 바라보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습니다. 단번에 답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묻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어느 날 문득 하나씩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있으면 에너지가 쉽게 소모되어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하는 것도, 소리에 민감해서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고요한 시간을 가지면서 알게 된 모습입니다. 편안하고 마음껏 즐기고 싶은 시간이 혼자 있는 시간입니다.   



  

‘새벽 시간의 고독과 고요와 정적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연료인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 그리고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생성을 촉진합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몰입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고 <변화의 시작 5AM 클럽>에서 말합니다. 새벽에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생성돼서 평소에 느끼지 못할 강도로 새로운 생각과 행복감을 느끼니 계속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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