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엄마가 떠나고, 나는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 혼자 남았다.
사람들은 전부 내가 망가질 것을 염려했다. 엄마와 나는 모녀지간을 넘어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걷는 친구이자 여자로서의 인생을 나누는 깊은 사이였다. 나는 엄마에게 내 안의 기쁨, 고통, 불안을 전부 털어놓았었다. 엄마도 자기 삶의 목격자인 나에게 많은 것을 공유했고 철부지 딸을 존중해 주었다. 게다가 나는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제 손으로 양말 한 짝 안 개는 몹쓸 딸년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자기 손으로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니 내가 무너지는 것은 정해진 결과였다.
그런데 나는 아주 잘 살았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려 엄마라는 사람을 잊은 것처럼, 스물몇 살의 청춘을 살아 냈다. 연애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고, 취업 준비도 하면서 내 길을 찾아 나갔다. 요리 레시피를 검색해서 김치전이나 된장찌개도 만들어 먹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공과금 내고 학자금 대출 갚고, 남은 걸로 치킨이랑 피자도 사 먹으며 알뜰살뜰 가계도 꾸리고 살림도 해나갔다. 엄마랑 살 때 철부지 연기를 하다가 제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나는 너무 잘, 살았다.
엄마를 묻었다. 아주 깊숙이, 꺼내볼 수도 없도록, 내 인생 구석 어디엔가 꽁꽁 숨겨놓고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나는 엄마를 추억하거나 엄마에 대한 내 감정 정리 따위를 하지 않았다. 누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따금 잠들지 못하는 고요한 밤에 자물쇠를 채운 상자가 덜컹덜컹 소리를 냈다. 그래도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나는 엄마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어림없는 끔찍한 죄책감이 혼자 남은 나를 덮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외면하는 편을 선택했다.
'엄마, 이다음에 천국에서 만나면 그때 다 이야기하자. 지금은 못 해. 도저히 못하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나는 내 삶을 열심히 살면서, 언제든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암에 걸리면 치료하지 말고 그냥 죽어야지. 무리해서 살려고 하지 말고 때 되면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진지하게 열심히 살았다. 우습지만 성실한 허무주의자였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엄마처럼 딸 하나, 아들 하나의 두 살 터울 남매를 키우게 되었다. 아이의 젖을 물리면서,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아이가 걸음마 떼는 걸 보면서, 넉넉지 못한 통장 잔고에 마음을 쓰면서, 속 썩이는 남편 때문에 눈물지으면서, 어색한 노력으로 시가에 며느리 노릇을 하면서,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니, 나는 다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엄마를 더 이상 외면하거나 덮어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엄마는 내 삶에 성큼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엄마, 나, 동생을 떠올리며 매일 울었다. 그 시절의 우리가 가엽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우리를 괴롭힌 몇 가지 일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매일 불행하거나 괴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재미있고 단란한 가족이었다. 엄마는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었고, 또 인기 많은 멋쟁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동생은 엄마 속을 썩이지 않는 속 깊은 녀석이었다. 우리 셋이 모여 킬킬 이야기를 나누던 아름다운 밤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조차 잊고 싶지는 않다.
엄마,
나는 아이들 키우며 씩씩하게 살고 있어.
많이 참고 울다가 마음에 병이 들어도
다시 또 사랑할 용기를 내면서 말이야.
왜냐하면 나는 엄마를 닮은 엄마의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