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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가을 1

by 난화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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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와 보는 곳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둑한 방 안을 나는 찬찬히 둘러본다. 비스듬히 앉아 모자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보인다. 엄마다...! 엄마, 여기 있었어? 왜 그동안 연락 안 했어..? 살아 있을 줄 알았어. 나한테 안 와도 괜찮아. 그냥 여기 있어도 되니까 얼굴 좀 보여 줘. 애타게 쏟아붓는 내 말을 등지고 엄마가 점점 멀어진다. 나는 일어나 잡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꿈이다. 


잠에서 깨었지만 가슴의 통증이 얼얼하게 남아 있다.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셨다. 엄마가 떠나고 꿈에서조차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켰고, 엄마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담긴 곳도 아는데, 꿈에서는 엄마가 숨어 살고 있다는 걸 진짜로 믿으며 안도한다. 


엄마의 기일은 11월 1일이다. 하지만 한 번도 기일을 챙기거나 엄마의 마지막 흔적이 있는 연화장에 자진해서 찾아간 적이 없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확인할 용기가 없다. 나와 함께 살던 엄마의 육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걸 목도할 자신이 없다. 동생도 같은 마음인지, 우리는 엄마의 기일이라고 해서 따로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았다.


엄마는 위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고 열심히 살았다. 전처럼 활기차게 사람들도 만나고 들에 나물을 뜯으러 나가기도 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엄마가 현실의 문제에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벌이가 없고 돈이 없어도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었다. 남을 돌보는 데 자기 인생을 다 바치는 사람 같았었다. 


그런데 엄마는 근처 아웃렛 옷가게 매장에 아르바이트를 구해 나갔다. 결혼 후에 한 번도 간 적 없는 동창회에 참석했다. 월급을 받아 구제숍에 가서 명품 비슷한 가방도 사 오고 멋쟁이 부츠도 사서 신었다. 본인이 일하는 매장에서 딸에게 어울릴 만한 셔츠나 스커트를 골라 가져오기도 했다. 나중에 딸 결혼식에 올 손님들이 있어야 한다며 이십몇 년 만에 시골 친구들과 연락을 했다.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일 수도 있었겠지만, 교회와 봉사가 전부였던 엄마였기에 나는 이런 변화가 낯설고 불안했다.


돈을 더 벌겠다고 공장에 나간 엄마는 다시 구역질을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하는 험한 일이었다. 나는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엄마는 한 달은 채워 줘야 한다며 기어이 일을 나갔다. 계속되는 구역질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엄마의 암은 재발했고, 이미 온몸에 전이된 상태였다. 첫 수술한 지 2년 만이었다.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라며 병원에서 해줄 일이 없다고 했다. 의사가 나와 이모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엄마는 우리의 낯을 살피더니 말했다. 


"왜 그래, 죽는데?"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엄마의 말에 우리는 아무 대답을 못했다. 엄마는 우선 근처 막내이모네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모부도 어린 조카들도 모두 우리 엄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 홀로 엄마를 돌보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모와 이모부는 일하러 가고, 조카들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와 나는 둘이 이모네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주로 소파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고, 나는 엄마 옆에서 책을 읽었다. 그 무렵 새로 사귄 남자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태연했다. 우리 엄마는 절대 안 죽을 거니까. 절대 죽으면 안 되니까.


엄마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입으로 피를 쏟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모네 있기도 어려웠다. 마침 엄마가 섬기던 작은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방 한 칸을 내어 주셨다. 그리고 내게 와 엄마 옆에 있으라 했다. 동생은 군대에 가 있었고, 평생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간단한 짐을 챙겨 엄마가 있는 교회에 찾아간 날, 나는 엄마를 보고 화가 났다. 앙상한 몰골로 피를 뱉어 내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엄마는 절대 나를 두고 죽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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