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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가을 2

by 난화

엄마가 마지막을 보낸 작은 교회에 도착한 날이었다. 나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느꼈지만, 나는 끝내 얼굴을 돌렸다. 이렇게 되어버린 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다시 이렇게 불행에 목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와 버린 사실이 분하고 억울했다. 목소리조차 낼 수 없게 쇠약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엄마를 바라보기가 싫었다. 정말 싫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식사 때가 아니면 들여다보지 않고 나와 엄마 둘이 시간을 보내게 하셨다. 엄마는 수시로 피와 물을 뱉어 냈다. 비닐 롤팩을 항상 손에 쥐고 있었다.


"엄마, 친한 오빠가 같이 배낭 여행 가자는데, 같이 가도 돼?"


지금 생각하면 엄마 속을 뒤집으려고 작정한 소리 같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내가 엄마를 붙잡는 방식이란 게 그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를 붙들어야 했다. 나는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철부지니까, 이런 나를 절대 놓고 가면 안 된다는 시위였고, 억지였다. 마치 삶과 죽음을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엄마는 나의 엉뚱한 소리에 가만히, 그러나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나는 왜, 왜? 가면 어때서? 좋은 기회인데! 하며 울었다. 엄마가 아파서가 아니라, 엄마가 나 여행 못 가게 해서 우는 것처럼 작정한 듯 막 울었다.


이모와 삼촌들이 엄마를 보러 왔다. 사촌 오빠랑 언니도 왔다. 엄마의 친구들도 왔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괴로운 이들은 차마 오지도 못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행렬이 못마땅했다. 우리 엄마는 안 죽을 건데, 왜 자꾸 죽을 것처럼 와서 눈물을 닦고 나간단 말인가. 다 짜증 나는 일뿐이었다.


엄마는 하루 한두 마디 하기도 힘들 만큼 기운이 다 했다. 나는 엄마와 며칠을 보내며,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먹었다. 찬송가를 펼쳐 목이 잠길 때까지 찬송을 불러 주었다. 엄마 손을 잡고 기도도 했다. 엄마를 살려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내 입술을 통해 나왔던 기도는, 엄마와 나의 오랜 추억에 관한 것, 서로의 오해에 관한 것, 엄마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또 그에게 사랑받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엄마가 떠나기 마지막 날, 온 힘을 쏟아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넌 나를 닮은 내 딸이다."


엄마가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우리는 화해했고,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으니, 신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거라 믿었다. 그날 아침, 갑자기 방문한 할머니 권사님이 삼일 동안 못 씻은 나더러 머리를 감고 오라고 했다. 머리를 다 감고 수건으로 말리려는데, 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떠나려고 하니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거였다.


..........?


머리에 수건을 감고 어리둥절하게 엄마 옆에 앉아 있던 내 앞에서 엄마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눈을 감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거짓말 같은 죽음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일어나 봐... 일어나.. 왜, 왜, 이런 더러운 옷을 입고 죽는 거야!! 내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준다고 했잖아!! 엄마...! 가지 마..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제발 가지 마......."


내가 모른 척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가 억지를 부릴 때마다 언제나 져주던 엄마였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매달리고 조르면 엄마는 떠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엄마는 나와 마지막 기도 후 평안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장례 전 내게 씻을 기회까지 주고 떠났다. 나는 아직도 죽음이 엄마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신이 엄마에게 좀 더 남아서 살 기회와 신 곁에서 영원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때, 엄마는 마지막으로 딱 한번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기도를 했으리라 믿는다.


남은 생은 이제 나의 몫이다.


엄마,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이

신의 선물이었다고 믿어.

나약한 내가 엄마를 잘 보낼 수 있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던 것 같아.


엄마가 나한테 자꾸 아빠 닮았다고 해서

엄마를 아프게 하는 아빠를 닮았다고 해서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더 사랑받지 못하나

그런 오해를 했었거든.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사랑했잖아.

그리고 엄마 아빠의 딸인 나를 사랑했잖아.

그 사랑의 깊이를 내가 감히 알지 못했을 뿐.

나의 깊은 오해를 풀어 주고 내 맘을 만져주고

마지막까지 딸을 사랑하다가 떠난 엄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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