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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음의 문턱에 가 있는 동안 나는

by 난화

2003년이 시작되는 겨울, 엄마는 대학 병원에 입원했다.

위암 말기 직전의 상태였고, 최대 생존율은 40%였다.

바로 수술했고,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엄마가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눕자, 우리 남매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 동안 우리 삶에 불어닥친 폭풍은 엄마가 오롯이 온몸으로 막아왔다. 우리는 그 곁에 떨어지는 약간의 빗방울이 튀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춥고 고달프다며 비바람에 흠뻑 젖은 엄마를 원망했었다. 내가 울고 불며 억지를 부려도 다 받아주던 엄마였다.


그 엄마가 죽음의 문턱에 누워 있다.


스물두 살의 나는 이제 마음껏 방황할 작정이었다. 내 멋대로 살아 보겠다며 휴학을 결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해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엄마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철든 아이가 병든 가족의 곁을 씩씩하게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 버리면, 겁을 먹고 얼어붙게 된다. 어제까지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실랑이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암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픈 엄마 옆에서 나는 더욱 겁쟁이 아이가 되어 버렸다. 엄마가 입원하고 퇴원하는 과정의 비용이나 행정적인 절차는 이모들이 처리해 주었다. 나는 엄마와 한 병실에서 먹고 자며 곁을 지키면 되었다. 엄마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도 무서웠지만, 솔직히 병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힘들었다. 비릿한 약냄새가 묻은 공기를 마시며 무력한 환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엄마를 부축해서 화장실을 따라가고 여러 잔일을 돕는 게 젊은 나를 어둡게 만들었다.


왜 나는 엄마가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나의 작은 불편에 괴로워하는 걸까?


엄마만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하고 씩씩하게 이 현실에 뛰어들지 못하는 자신이 미워 죽을 것 같았다. 비위가 약하고 겁도 많은 나였지만 이런 순간만이라도 엄마의 강인한 보호자가 되어 주기를 스스로 간절히 바랐다. 안 그래도 엄마는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게 된 것을 미안해하고 있었으니까. 제발 엄마의 그 깊은 사랑에 어울리는 딸이 되었으면 했다.


엄마의 수술이 끝나고,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살고자 하는 엄마의 의지는 강했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우리 남매의 밥을 다시 차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밥을 얻어먹었다. 엄마는 힘드니까 쉬라고 하지 않았다. 엄마가 엄마 역할을 하기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묵묵히 앙상한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앉았다. 예전과 비슷한 일상이 펼쳐지자 나는 금방 안심했다. 엄마는 살았고, 이제는 다 괜찮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다시 내 삶을 살았다. 친구와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하고 운전 연수를 받았다. 동네 재즈댄스 학원에도 등록했다. 그렇게 여름이 오고 나는 생계이자 본업처럼 해오던 과외를 전부 그만두었다. 월 200만 원 가까이 벌었으니까 우리 집 생활비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벌이였다. (20년 전 물가니까 현재 기준으로 5,600만 원 정도의 수입이다.) 내게는 돈벌이라는 짐이 너무 무거웠고, 내가 원하는 걸 해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난데없이 반수를 하겠다며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누구 하나 찬성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미 대학을 2년이나 다녔고, 사범대라는 전공을 바꿀 것도 아니고, 그저 대학 이름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학원에 등록했다. 교재도 사고 독서실도 끊었다. 엄마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자,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공부해서 소원인 서울대에 가라고 했다. 나는 공부에 자신이 있었다. 잘했고,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22살의 나는 고등학생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제일 당황한 건 나였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또다시 나를 미워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엄마,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하길래

나는 엄마가 이제 괜찮은 줄 알았어.

우리를 끈질기게 쫓던 불행의 그림자에서

영영 벗어났다고 생각했어.

아픈 것과 약한 것을 감추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엄마에게

나는 다시 상처를 주었지.


내가 과외를 그만둔다 해도

엄마는 말라지 못했고

내가 대학을 그만둔다 해도

엄마는 말리지 못했고

내가 성실하지 못해도

엄마는 나무라지 못했어.


엄마는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나도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랐어


그렇게 이기적인 나를

얼마나 미워하며 울었는지

그런 이기적인 나를

끝까지 사랑하는 엄마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22살은 어른이 아니었어.

엄마 딸로 있을 때

나는 어리광을 부리느라

어른이 되지 못했어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며

나약했던 나를 좀 안아주고 싶어.

엄마처럼 강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그러니까 이제 자신을 그만 미워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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