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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절망 옆에서 엄마는

by 난화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는 무엇입니까?"


임용고시 2차 면접시험에서 마주한 질문이었다. 답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몇 분에 불과했다. 내 인생을 넘어트린 실패와 그것을 딛고 일어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는 반드시 생각해 내야 했다. 함께 면접장에 들어선 이들은 주로 임용고시 시험에서 떨어진 경험을 이야기했다. 감정에 북받쳐 훌쩍거리기라도 하면 면접관이 휴지를 건네주는 아주 인간적인 면접이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19살 수능 시험날을 떠올렸다. 남에게는 너무 뻔할 수 있게 들릴 입시 실패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때의 내 절망과 고통을 과연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그것만큼 나 자신을 괴롭혔던 일도 없었던 것 같아 마음을 정했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학교 옥상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학생에 관한 기사가 종종 나오고는 한다.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앞날이 구만리 같은데 입시가 뭐라고, 성적이 뭐라고 그 무서운 선택을 하느냐며 탄식을 한다. 그러나 어떤 절망은 인간에게 사망 선고와도 같아서 기어이 호흡을 끊어 놓고야 만다.


19살의 나는, 죽을 용기가 없어서 20살이 되었다.


나는 19살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다. 주머니에 50원짜리 동전 한 푼 없는 지난한 날들의 연속이어도, 빚쟁이들이 쫓아와 나에게 사기꾼의 딸년이라고 욕지거리를 해대도, 나를 따돌리는 아이들 때문에 혼자 학교 캠핑에 가게 되었어도, 이 모든 일은 내 잘못이 아니고, 나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일 뿐이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언젠가 내 힘으로 과거의 이 치욕들을 벗어던지리라 결의를 다졌었다.


나에게 있어서 대학 입시는 나를 수치스럽게 하고 괴롭게 만든 지난날들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 될 예정이었다. 오로지 내 실력으로 서울대에 들어가서 엄마도 기쁘게 하고, 나도 행복해지려고 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지 못했지만 학교 수업에 충실했습니다.. 따위의 성공 신화를 이루고자 했었다. 나의 열아홉은 오로지 서울대 입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바쳐졌다.


차라리 희망이 없었다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미친 사람처럼 공부하는 동안 성적이 최상위권에 안착했다. 4시간을 자고 내내 깨어 공부하는 날들이 365일 계속되어도, 하나도 싫지 않았다. 나는 내 성적이 꽤 높다는 것도, 그래서 내가 신이 난다는 것도 쉬쉬 하면서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수능 시험장에 들어서면서도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드디어 수능이군, 하며 자신만만했었다. 수능 시험 1교시 언어 영역에서는 전 날 마지막으로 본 지문이 나왔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시험이 끝나자 시험지를 끌어안고 집에 와 채점을 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실패했다는 것을. 제발, 신께서 이번 한 번만 나를 도와주신다면 과거 내 인생에 들이닥친 어떤 불행과 불편도 다 용서하려고 했었다. 나는 시험지를 쥐고 밤새 짐승처럼 울었다. 그 해 수능 시험은 역사상 가장 쉬운 난이도로 출제되었고, 나를 제외한 수 천명의 학생들이 최상위권에 올랐다.


"어떻게 이래,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나한테 이래........"


초점 잃은 눈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딸 옆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엄마,

딸의 처절한 울음을

그 서러운 절망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엄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늘 그랬듯 '나'만 보였으니까.


나는 나 자신이 싫었고

엄마도 미웠고 신도 증오했어.

어차피 안 될 거였는데

희망이라는 꼭대기에 나를

올려놓지나 말지.

나를 위해 기도하지도 말고

나를 꿈꾸게 하지도 말고

그냥 우리 처지에 맞게

적당히 살자고나 하지


나는 엄마를 원망하는 것으로

내 실패를 벗어나려고 했나 봐.

엄마에게 잘못을 다 뒤집어 씌우고

나는 살려고 했었나 봐.


나 임용고시 면접을 무사히 통과했어.

그때의 실패 덕분에 말이야.

엄마한테 화풀이하면서 이겨냈다고는

말 못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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