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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라라 Mar 04. 2020

2004.1.1. 떼뽀쓰뜰란

Tepoztlan

2004년이다. 아침에 식사를 하려는데 자리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하고 합석을 했다. 프랑스 남여, 연인 사이인 이탈리아 남과 잉글랜드 여, 그리고 나. 잉글랜드 여자한테 과테말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었다. 꼭 가보고 싶다. 그러려면 가이드북이 필요할 텐데 어디서 구해야 할지. 아니면 가이드북 없이 그냥 가 볼까. 물어물어 보면서. 모르겠다. 멕시코 비자를 한 달을 받았기에 과테말라를 다녀오거나 비자를 연장해야 하기에 어쨌든 선택은 해야 한다. 과테말라 비자도 대사관에 가야 할지 국경 넘어갈 때 받을 수 있을지도 알아봐야겠고.


전철 타러 가는 길에 아침을 같이 먹었던 프랑스 커플과 함께 했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오늘은 Tepoztlan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코스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조용한 길을 예상하고 남쪽 터미널로 갔다. 1등석만 운행해서 1등석을 타고 도착. 내려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여인 둘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같이 주스나 마시자 제안해왔다. 그러자고 했더니 이들 어인 호텔로 들어가더니 식사를 하는 게 아닌다. 돈 없는 나는 최대한 저렴한 것으로 먹으려 했지만 그래도 63페소나 나왔다. 주스는 굉장히 맛있었는데 전통적인 식사라는 내가 시킨 음식은 별로였다.


팥 덩이처럼 생긴 거랑 아보카도 뭉게 양파랑 섞은 걸 한 덩어리씩 올려놓고 치즈만 가득한 따꼬가 나왔다. 웩. 돈이 아까워 속으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이 돈이면 길에서 파는 맛있는 따꼬랑 같은 맛난 음식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데. 여차저차 식사를 끝내고 더 깊이 들어가서 등산을 하잔다. 올라가는데 한 시간, 내려가는데 한 시간. 때는 바야흐로 세 시가 넘어가는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버스터미널까지 가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를 것 같았다. 버스 시간이 걱정된다고 말하고 나 혼자 돌아왔다. 굿바이 인사하고. 멀리서 보기에 산은 완전 절벽인데 어떻게 등산길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올라가면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걸 못 봐서 조금 아쉬웠다. 산 입구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삼십 분 이상을 또 걷고 (사실 여기 왕복 버스가 있는데 어떤 건지 어디서 타야 할지 몰라서 그냥 걸었다.) 버스 터미널에 있던 엄청 착하게 생긴 아저씨랑 대화를 해 보려 했으나 아저씨만 떠들고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어버렸다. 내가 스페인어를 잘 못하게도 하지만 아저씨 말도 진짜 빨랐다. 버스 타고 오는 길에 피곤해서 살짝 잠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성당 오른쪽 터에 사람이 둥그렇게 모여 있어서 무슨 일인가 가 봤더니 힙합춤을 추고 있었다. 바닥이 타일도 아니고 거친 바닥이었는데 꽤 잘 추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댄서들이 훨씬 잘한다.


몇 백 년 된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힙합 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조용히 있고 싶으면 그냥 가만히 있고 심심하면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된다. 잠시 길동무가 되기도 하고 뜻밖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그나저나 Tepoztlan을 함께한 여인들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쉽다. 한 명은 조금 말라서 끊임없이 떠들고 다른 한 명은 조금 통통하고 말을 잘 들어주며 미소가 인자해 인상 깊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지금은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하고, 9시 정도 되었다. 집에서보다 더 열심히 씻는 것 같다. 그래야 피로가 더 잘 풀리니까. 내 발이 오늘도 고생했는데 내일을 뭐할까. 다른 곳을 옮길지. 멕시코시티 주변을 한 군데 더 볼지.


옮기고 싶기도 한데 선뜻 용기가 안 난다. 그새 여기가 익숙해져서.





지금의 감상


그때 밥 먹은 두 아줌마, 지금의 나라면 같은 아줌마로 신나게 수다 떨 수 있었을 텐데.

수줍고 새초롬하고 내성적인 그때의 나라서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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