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이야기 8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고향인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만 20살에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면서 가진 내 첫 자산은 대학 근처 오피스텔이었다. 25년 전에 아버지가 주신 5천만 원을 손에 쥐고 올라와 당시에 꽤 괜찮은 복층 오피스텔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위치가 강북이었고 대학가 근처에 원룸 물량이 많다 보니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전세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전세금이 종잣돈의 시작이었다. 나는 금수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부모님 덕분에 재테크의 첫출발 종잣돈 모으기가 이렇듯 순조로운 편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전세로 계약한 그곳에서 내리 4년을 살았다. 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되어 다음 오피스텔은 직장 근처로 한 번 이사하게 된다. 복층이 살아보니 계단을 오르내려야 돼서 불편했던 터라 이번엔 비슷한 평형이지만 단층으로 된 조금 더 넓은 원룸을 얻었다. 보증금은 6천만 원이라 직장인 신용대출을 이용해서 부족한 금액 1천만 원을 단기 대출받는다. 내 생애 첫 대출금이었다. 매달 월급에서 100만 원씩 원금과 이자로 갚아나가 1년도 안되어 빌린 돈은 이내 다 갚았다. (이때만 해도 빚을 내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어쨌든 사회인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 좋은 점은 매달 월급이 나온다는 것 이외에도 대출이 잘 나온다는 점이란 걸 처음 알았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을 때, 퇴근해서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밥 숟가락 들 힘조차 없을 때 2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월급과 대출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마음 깊은 곳으로 다시 쑥 들어가고 만다.
모든 사업은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 자신의 돈을 직접 사업투자금으로 쏟아부어야 되는 것과는 달리 나 같은 월급쟁이들, 특히 안정적인 공무원의 최고 장점은 초기 투자금이나 비용 없이 내 한 몸 나가서 일하면 꼬박꼬박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의 힘은 대단하다. 이건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오랜 기간 육아휴직을 하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한 아이당 1년씩만 육아휴직 보조금이 나오고 나머지 휴직은 무급휴직이다. 특히 둘째를 낳고 무급 휴직을 했을 때의 쪼들림이란... 식구는 두 명이나 더 늘었는데 맞벌이 부부로 살다 한쪽이 무급휴직을 하게 되어 월급이 절반 가까이 뚝 끊기다 보니 아끼다 못해 궁색해져 갔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다. 비록 적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내가 배당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특히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에게 일터는 아직도 건재한 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면서도 굉장히 고달픈 곳이기도 하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생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토록 힘들지만 나는 여전히 직장에 나가고 있으며 내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자아성취라는 보기 좋은 포장지로 날 감싸진 않겠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어떤 투자수단도 내 월급만큼 나한테 큰 액수를 보상해 주지 않으며 그 누구도 직장인 담보 대출처럼 나에게 큰돈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지금은 나도 오랜 실전 경험이 쌓였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내가 주식 멘토라고 생각한 1, 2명의 유튜브만 구독하고 있는데 한참 주식공부하던 시절엔 유명 유투버 외에도 여기저기 알고리즘을 타고 평범하지만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접해 본 적이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한 분은 본인은 S전자에 다니는 직장인이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토록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이유가 주식을 사고 싶어서란다. 매달 월급이 나오면 줄일 수 없는 일정 부분 생활비만 제하고 나머지는 미국 배당주, 국내 배당주에 몽땅 투자가 한다고 했다. 보다 쌀 때, 아직은 저평가되어 있는 주식을 사고 나면 그렇게 든든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출근해야 하는 이유라고... 같은 월급쟁이 입장으로 200% 공감되는 얘기였다.
직장인 입장에서 대출받아본 경험을 공유하자면 아래와 같은 순서로 대출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1. 먼저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 대출이 심사는 까다롭지만 많은 금액(목돈)을 빌리기에 유리하다. 보증 물건이 부동산으로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방학을 이용해서 제1 금융권에 내가 가진 부동산을 담보로 얼마를 어떤 이율에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는 편이다. 굳이 지금 당장 그 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빌리지도 않을 거지만 최소 1년에 2번 정도 상담을 받는다. 이렇게 상담을 받는 이유는 지금 내가 융통할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확인 차원에서도 있지만 부동산을 담보로 받는 대출은 정부 정책의 영향에 민감하게 변동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가능했던 대출이 막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사전에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2. 직장 관련 신용대출 상품은 제1금융권에 다양하게 나와있다. 내가 주거래 하는 은행만 해도 '선생님 든든 대출'이라던지 '군인 관련 상품' 또는 '직장인 신용 대출' 등 온라인 상품만 해도 수개에 다다른다. 대출 가능 금액과 최저 이율등을 비교해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신청하면 된다. 서류 조건만 잘 갖추면 당일 즉시 대출도 가능하다.
3. 공무원 연금담보 대출은 본인이 불입한 연금 금액의 50% 한도 내에서 대출이 가능한 상품이다. 근무연차가 오래될수록 더 많이 대출받을 수 있다. 이율도 제1금융권과 큰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은행에서 관련된 대출을 받고도 부족할 경우 이용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4. 교원공제회 대출은 우선 회원이어야 하므로 모든 사람이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 많은 금액을 불입하지는 않지만 회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기 때문에 가입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그 혜택 중 하나가 대출인데 이율은 제1금융권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니지만 연금담보 대출처럼 역시나 은행원에서의 대출이 추가로 어려울 경우 유용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기관이다.
5. 휴직기간에 아이들 보험을 담보로 소액을 대출받아본 적이 있다. 휴직하고 나서 씀씀이는 그대로인데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끊겨서 한동안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편하게 소액을 대출받을 수 있어서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썼다. 이율 또한 그리 높지 않고 합리적인 편이다. 다만, 대출 금액은 얼마 되지 않으니 긴히 소액이 필요한 경우에만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대출은 양날의 검과 같다. 본인이 갚을 수 있는 능력만큼 적당히 빌려서 투자든 소비든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쓴다면 재테크를 위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검이 되겠지만 셀프 변제 한도를 초과한 빚은 본인을 찌르는 검이 되어 나를 공격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대출의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건 참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빚투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요즘 시대에 투자를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있는 돈으로만 하려다 보니 아쉽고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투자를 하고 싶은데 과연 어디까지가 대출의 적정선인 것일까? 여러 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노동을 통해 갚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만을 빌린다.
내가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무리한 채무는 위험하다. 이를 항시 기억하면서 투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