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2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
윤이(가명, 첫째)는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 100일이 되도록 내가 제대로 누워서 잘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센서가 달렸는지 아기띠를 매고 겨우 재운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을라 치면 깨서 어떻게 알았는지 앵앵 울었다. 마치 '나를 눕히지 말아요, 계속 안아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다가도 자꾸 깨서 울었고 모유수유 간격도 짧은 편이라 백일의 기적(백일 이후로는 아이가 눕혀도 잘 자고 수유 간격이 길어져 밤에 5-6시간씩 엄마가 꽤 편하게 잘 수 있게 되는 현상) 이후로도 통잠을 재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부 아기는 100일이 지나도 2-3시간마다 깨는 경우도 있는데 큰 아이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그런데 둘째 준이(가명, 둘째)는 달랐다. 세상 순한 둘째는 형아보다 1킬로그램이나 적게 작은 아이로 태어났다. 병원에서부터 영양분유를 먹였고 조리원에서도 작고 마른 아이라 영양분유를 꼭 먹인다고 했다. 쉽고 수월하게 빨아먹을 수 있는 분유를 먹다 보니 준이는 완모 한 윤이와는 달리 점점 힘들게 빨아야 되는 모유를 찾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14개월을 완모 한 형아와는 달리 준이는 두 달 만에 엄마 젖을 떼고 분유만 먹게 된다.
준이는 꿀떡꿀떡 분유를 참 잘도 받아먹었다. 한 번에 먹는 양도 많았고 배고플 때나 기저귀가 젖었을 때 이외에는 칭얼거리는 법도 없었다. 100일 전부터 통잠도 잘 잤고 울음소리도 크지 않아서 엄마 귀를 거슬리게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아기의자 바운서에도 한참 동안 잘 앉아 있었고 유모차도 잘 탔고 정말 순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둘째 아이를 '순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첫째 아이에 비해서 키우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만 19개월부터 어린이집에 1시간씩 다녔던 윤이에 비해 준이는 순하기도 했고 욕심 많은 엄마의 대학원 진학으로 인해 만 7개월 때부터 형아가 다녔었던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졌다. 다행히도 준이와 같은 달에 태어난 또래 친구 주원(가명)이와 함께 입소하게 되어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다. 너무 빨리 단체생활을 시킨 것 같아 준이에게 미안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2살, 5살 형제를 주변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키우다 보니 많이 지쳐 있었다. 남편은 회사일이 많아 자주 늦었고 윤이가 유치원을 다니긴 했지만 오후 3시만 되면 끝나다 보니 오전 내 준이를 봐주고 집안 살림하고 나면 윤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어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첫째를 낳고 끊겼던 배움의 끈도 다시 살릴 겸, 대학원 재입학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과제가 많고 준비할 것들이 생겨 준이를 생각보다 일찍 입소시킨 것이다.
지금 5학년, 2학년이 된 형제들은 각자 알아서 놀거나 활동하는 시간이 있어- 많진 않지만- 엄마는 잠깐씩 미타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5살, 2살 형제들을 키울 땐 정말 전쟁이 따로 없었다. 특히, 첫째 윤이가 예민하면서도 활동적이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아이였기 때문에 주로 첫째에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고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때부터 이미 준이에게 주어지는 여러 언어 자극들, 케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지 뒤돌아 보면 가장 뼈아픈 나의 실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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