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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되는 관계의 시간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39

by Rani Ko
불안과 애착
아이의 불안은 때로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직 안전하지 않아서 시작된다.



준이의 마음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경험과 인풋이 부족해 알고 있는 것이 적으니, 더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보이는 반응들은 단순히 ‘아는 것이 적어서’로 설명되지 않았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한 준이의 모습은 결국 ‘불안’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될 수 없었다. 불안이 높다는 것은 외부 세계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곧 학습과 적응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준이는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이며 이 불안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할 걸까? 특히 새로운 상황, 낯선 환경, 처음 겪는 장면에서 불안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실제 검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검사자 선생님은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접했을 때 특히 더 당황했다”라고 설명했다. 각 검사 하위 영역에서도 익숙한 과제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처음 접하는 문제 유형에서는 점수가 크게 낮았다. 항목마다 편차가 심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결국 준이의 불안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능성이 스쳤다. 임신 기간 내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불안했던 나의 심리 상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준이와의 애착 형성 과정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원인을 하나로 특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종합적으로 바라보면, 윤이를 돌보던 시기보다 준이를 양육하던 시기의 나의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첫째 양육에서 이미 피로도가 높아진 상태였고, 준이가 태어난 후 기저귀를 떼기까지의 3~4년은 나에게 유난히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기였다. 자연스레 윤이에게 기울였던 애착과 집중을 준이에게 동일한 밀도로 주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모유 수유 여부 역시 마음에 남았다. 윤이는 모유를 먹이며 양육했지만, 준이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영양분유로 전환했다. 몸을 밀착해 안아주는 시간이 줄어든 이 차이 또한 준이의 불안 형성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엄마인 나로서는 그 시기의 모든 작은 선택들이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지점이 되었다. 결국 준이의 불안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의 기질, 환경, 양육자의 내적 상태가 복합적으로 얽혀 만든 결과임을 알면서도, 더 잘할 수 있었던 과거의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비로소 준이의 마음 상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이 순간, 준이의 내면은 어떤 진동을 경험하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나는 준이가 가진 생각과 심리 상태를 더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관찰을 이어가면서 보인 특징은 명확했다. 준이는 변화 가능성이 적고 안정적인 상황을 선호하는 아이다. 첫째 윤이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인데, 준이는 실패 자체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고 싶어 했고, 틀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기질도 있었다. 여기에 생각보다 빠르고 급한 성향까지 더해지며, 새로운 것을 차근차근 시도하기보다는 익숙한 것을 빠르게 해치워버리려는 특징을 보였다.


이러한 기질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준이에게 “틀려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잘하지 못해도 안전하다는 감각, 실패가 곧 위협이 아니라는 인식이 준이에게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엄마로서 매 순간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준이에게 끊임없이 시도해 보자는 용기, 실패를 통과하며 성장하는 힘을 전하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아빠와 주로 애착이 형성된 준이와 내가, 이제 와서 다시 애착을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다 김붕년 교수의 책을 읽으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의 애착관계는 반드시 한 사람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초기 애착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더라도 청소년기에 다시 한번 기회가 열린다는 사실이었다. 그 시기에 부모가 안정적인 관계를 잘 만들어주면, 이것이 새로운 ‘두 번째 애착관계’로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준이와 제2의 애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서 있다. 불완전했던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의 마음에 안정된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애착이론에서 말하는 ‘불안 기반 행동’은 단순한 성격적 특성을 넘어, 아이가 세상을 얼마나 안전한 장소로 인식하는가와 직결된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과도한 불안, 문제 유형이 바뀌었을 때의 급격한 수행 저하, 실수에 대한 과도한 회피는 모두 정서적 안전감 부족에서 기인할 수 있다. 이는 양육자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한 환경적·기질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요한 것은, 애착은 고착되지 않으며 아이는 ‘안전기반’을 재구축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준이를 위한 실제 개입 및 교육전략을 짜 본 것이다.


1. 실패 허용 경험 늘리기
틀려도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제공하며, 작은 성공보다 ‘감히 시도해 본 행동’ 자체를 강화한다.

2. 새로운 자극을 단계적으로 노출
완전히 낯선 과제보다는, 친숙함을 일부 포함한 ‘준-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해 불안 완화.

3. 정서적 루틴 만들기

예측 가능한 하루 일정, 과제 시작 전 감정 점검, 학습 후 안정 활동을 통해 정서 안정 기반 마련.

4. 관계 속에서 안전감 재형성
제2의 애착 형성은 특정 이벤트보다 ‘일관성 있는 반응’이 핵심이다.

조급함을 줄이고, 준이가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조용히 받아주는 경험이 누적될수록 두 번째 애착은 강화되리라 믿는다.




애착관계에서 스킨십도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수시로 준이를 안아주고 볼뽀뽀를 해주며 주 3회 이상은 반드시 함께 자려고 한다. 한 번 놓친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그렇다고 흘러가 버린 과거만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아이와의 다가올 제2의 애착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편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이의 불안을 이해하려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아이의 마음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완전하지 않았던 과거를 딛고,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기회였다.



#불안기반학습 #애착형성 #두번째애착 #느린학습자의심리 #정서적안전감 #준이의이해 #엄마의성찰



참고문헌

김붕년,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 코리아닷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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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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